함영씨 ‘인연으로… ’ 출간
보살(菩薩)은 본래 ‘깨달음의 경지에 올랐으나 중생을 구제하고자 해탈을 미루고 있는 성인’을 뜻한다. 그런데 절간에서 일상 쓰는 보살이란 호칭은 여신도, 특히 공양간(부엌)에서 밥 짓는 공양주를 지칭한다. 음식을 만들어 뭇 대중을 먹이는 행위를 보살의 무한한 자비심과 연결시켰기 때문이다.오이 장아찌를 만들기 위해 말린 오이를 손질하고 있는 공양주 보살 공덕심(왼쪽) 할머니와 자성월 할머니.
타임팝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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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신간 ‘인연으로 밥을 짓다’(함영 지음, 타임팝 펴냄)는 공양주들을 ‘밥 짓는 수행자’라고 소개한다. 지금은 대부분 절의 공양주가 일종의 직업이 돼 버렸지만, 진정한 의미의 공양주는 불가의 가르침과 인연이 없이는 하기 힘든 수행자와 같다는 의미에서다.
하지만 공양주들의 수행은 스님들의 수행과는 완전히 의미가 다르다. 스님들이 ‘자신의 깨달음을 위한 수행’을 한다면 공양주 보살들은 ‘남의 깨달음을 위한 수행’을 한다. 이들의 수행은 정진하는 스님들의 건강을 지키고 꾸준한 수행의 힘을 제공하기 위한 것이다.
책은 우선 북한산 광륜사에서 수십 년간 공양간을 지켜온 공양주 ‘자성월 할매’와 부공양주 ‘공덕심 할매’의 수행기를 전한다. 두 공양주는 평생 장좌불와(長坐不臥·눕지 않고 앉아서 수행함)와 일중식(日中食·하루 한 끼만 먹음)을 실천했던 청화(1924~2003) 대종사의 밥상을 챙겨온 보살들이다. 큰 깨달음을 이룬 스님 뒤에는 이런 고행에도 건강을 유지할 수 있도록 식단을 꼼꼼히 챙겼던 공양주 보살들의 노력이 있었던 셈이다.
이어 소개하는 전남 용천사 전정희 보살과 선덕행 보살도 만만치 않다. 30년간 공양간에서 손발을 맞춰 온 두 보살은 선방(禪房)에서 함께 수행하는 ‘도반(道伴)’과 다름이 없다. 이들은 서로를 이끌어주는 한편, 넉넉한 웃음과 인심으로 ‘스님들의 어머니’ 역할을 톡톡히 해 나간다.
각종 불교 매체에 글을 쓰는 자유기고가인 글쓴이는 오랜 현장 취재를 통해 공양간의 모습을 생생히 재현했다. 책에는 공양주들의 생생한 육성과 함께, 스님들이 먹는 자장면과 탕수육을 흉내낸 탕수채, 떡국, 팥죽, 각종 장아찌 등 사찰음식의 요리비법 30가지도 전한다. 티베트 스님들이 사는 부산 광성사의 이국적인 공양간 모습도 전한다. 1만 4800원.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2010-04-07 2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