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는 홍보대행사?

TV는 홍보대행사?

입력 2009-02-16 00:00
수정 2009-02-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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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앨범 알리기 “너무 노골적 아냐” 벗고 키스하고 “너무 자극적 아냐”

회사원 K(29·여)씨는 얼마 전 TV를 보다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오랜만에 컴백했다는 한 가수가 서로 다른 프로그램에서 똑같은 내용의 에피소드, 경험담을 쏟아내고 있었던 것. K씨는 “연예인들의 홍보기간이 정해져 있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리모컨을 돌릴 때마다 앵무새처럼 똑같은 내용이 방송되어 썩 기분이 좋지 않았다.”고 말했다.

안방극장이 또다시 ‘홍보 홍수’에 몸살을 앓고 있다. 한동안 홍보 일색 프로그램에 대한 반대심리로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었지만, 최근엔 ‘불황’을 이유로 특히 예능프로그램을 이용한 노골적인 홍보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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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플러스
상상플러스


●예능 프로그램은 드라마·영화 홍보용?

방송3사의 예능 프로그램들이 ‘홍보의 장’으로 변질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최근 빈도 수가 잦아지고 방법 또한 노골적으로 변하고 있다. 특히 연예인이 출연하는 토크쇼는 애초의 기획의도나 개성을 살리지 못하고 자사 드라마 혹은 개봉 영화 출연진에 의존하는 구태의연함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제작진은 비교적 손쉽게 스타를 섭외하고, 연예인은 출연작을 홍보할 수 있다는 이해관계가 들어맞은 결과지만, 시청자는 겹치기 출연에 식상한 내용을 보며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

일례로 아름다운 우리말을 아끼고 보존하자는 기획 의도로 주목받았던 KBS 2TV의 ‘상상플러스’는 최근 연예인들의 입담 중계에 상당 시간을 할애하고 있지만 시청자들의 눈길을 잡는 데 실패하고 있다.

지난 10일에는 현재 방영되고 있는 KBS 수목드라마 ‘미워도 다시 한번’의 주인공들이 출연했지만, 3주째 동시간대 방영되는 SBS 시사 프로그램 ‘긴급출동 SOS 24’의 시청률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했다. MBC ‘황금어장’의 ‘무릎팍도사’에는 최근 MBC 월화드라마 ‘선덕여왕’에 주인공으로 캐스팅된 고현정편을 방송한 데 이어 지난 11일에는 자사 드라마 ‘신데렐라맨’으로 컴백하는 권상우편의 녹화를 마쳤다. 권상우는 영화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 홍보차 이달 중 MBC ‘놀러와’에도 출연할 예정이다.

한편 SBS 예능 프로그램 ‘절친노트’는 가수의 앨범 홍보를 둘러싸고 논란에 휩싸였다.

‘절친노트’는 관계가 소원해진 스타들의 친분을 회복시켜 준다는 취지의 프로그램. 그런데 지난달 30일과 이달 6일에 걸쳐 가수 신지와 솔비편의 방송이 나간 뒤, 이들의 프로젝트 듀엣 앨범 ‘더 신비’의 발표 소식이 나왔다. 시청자들은 “사이가 별로 나쁘지도 않으면서 앨범 홍보를 위해 의도적으로 출연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소속사측은 “3년 전 프로젝트 음반의 준비를 마쳤지만, 두 사람의 관계가 멀어져 활동이 연기됐고, 이번에 중단된 듀엣 활동 논의가 자연스럽게 재개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권지연 분과장은 “이미 방송3사의 연예정보 프로그램이 자사 드라마 혹은 개봉영화 홍보 수단이 된 것도 모자라 토크쇼까지 겹치기 출연하는 것은 지나치다.”면서 “이는 보는 이들에게 신선함을 안겨주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다양한 프로그램을 볼 수 있는 시청자들의 선택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한 방송사 홍보관계자는 “드라마 출연진이 예능 프로그램에 나온다고 해서 시청률에 즉각적인 반응을 불러오는지는 알 수 없지만, 화제성에서는 분명 효과가 있다.”면서 “계약서에 홍보 활동까지 명시된 영화계와 달리 TV드라마는 그런 규정이 없어 오히려 작품 홍보를 위해 적극적으로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스타가 고마울 때도 있다.”고 말했다.

●과다 노출 ·키스신… 자극적인 홍보 백태

드라마 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선정적이고 과장된 홍보 방식 또한 과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데 업계 관계자들도 동의하고 있다. 요즘엔 드라마 시청률이 극초반에 결정되면 회복이 힘들고, 방송사의 홍보도 외주사에서 맡는 경우가 많아 정제된 정보보다 일단 ‘띄우고 보자’식의 홍보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인터넷 포털 사이트 위주의 홍보 방식은 더욱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홍보를 부채질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사극의 ‘노출 마케팅’이다. 웬만한 사극에서 여배우의 목욕 장면은 빠지지 않는 홍보 수단이다. SBS ‘바람의 화원´의 문근영, MBC ‘돌아온 일지매’의 정혜영에 이어 최근엔 아직 방송이 한 달 남짓 남은 SBS 대하사극 ‘자명고’에 출연하는 박민영의 과감한 노출이 담긴 목욕 장면이 각종 포털 사이트를 장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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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명고
자명고


드라마 ‘꽃보다 남자’ 역시 과장 홍보로 시청자들의 빈축을 샀다. 지난 2일 KBS는 보도자료를 통해 남녀 주인공의 키스신 사진과 함께 출연진의 말을 빌려 “매우 강도 높은 키스신이 될 것”이라고 홍보했다. 하지만 정작 3일 방송분에서는 공개된 사진과는 다른 장면이 전파를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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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남자
꽃보다 남자
제작진이 고등학생이 주인공인 드라마에 지나친 키스신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부 시청자들은 “시청률을 의식한 드라마 사전 홍보가 지나친 것 아니냐.”며 불만을 토로했다.

자극적인 홍보 방식은 일시적으로 시청자의 눈길은 끌 수 있을지 몰라도 정작 전체적인 드라마의 완성도나 개성을 드러내는 데는 부정적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정덕현 드라마 평론가는 “초반 시청률 싸움이 거세지다 보니, 좋든 나쁘든 일단 논란거리를 만들 수 있는 ‘노이즈 마케팅’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면서 “단편적인 홍보방식은 편견을 형성해 전체적인 작품에 대한 그릇된 시각을 심어줄 수 있으므로 다양한 방식으로 드라마를 보여줄 수 있는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2009-02-16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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