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드라이브] 김기덕 감독 ‘고상한 오만’

[시네드라이브] 김기덕 감독 ‘고상한 오만’

황수정 기자
입력 2006-08-11 00:00
수정 2006-08-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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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덕 감독의 언행을 지켜보는 일은 ‘대략 난감’이다. 그가 세계영화제들이 살뜰히 기억하고 챙겨주는 ‘코리안’ 브랜드 감독이기에 더욱이나 그렇다.

지난 7일 근 2년 만에 언론을 만난 그는 대뜸 한국영화 시장과의 결별을 선언했다.“지금까지 13편의 영화를 만들었는데 좋은 기억을 갖고 있지 못하다.”더니 “부산국제영화제든 어디든 국내의 어떠한 영화제에도 작품을 출품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감독은 지난해 ‘활’을 기자시사회 없이 단관개봉하는 모험을 감행했다. 그러나 관객동원에는 참패. 이후 국내 관객에겐 더욱 단단히 빗장을 걸었다.24일 개봉하는 ‘시간’은 극도로 의기소침해진 감독이 한국자본 참여없이 일본쪽 투자만으로 만든 13번째 저예산 영화다. 영화사 스폰지가 판권을 수입한 덕분에 가까스로 국내 관객을 만나게 된 전례없는 개봉과정을 거쳤다.

모처럼 공식석상에 나타난 그에게 언론의 관심이 쏠렸던 이유는 하나였다. 그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감독이고, 그런 이가 다시 모국의 관객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모습을 볼 수 있길 고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짧은 회견은 허탈함 자체였다. 언론노출을 꺼려온 이유를 묻자 “헤이리에 놀러가 보면 좋을 것”이라고 답하는 등 귀를 의심할 정도로 동문서답의 연속이었다.“한국은 그저 ‘시간’을 수출한 30여개국의 하나일 뿐” 등의 무성의한 냉소적 발언들로 인터뷰가 채워졌다.

김 감독의 해법은 끝내 실망스러웠다. 세계영화제의 스타감독이 자신의 작품을 자국에서 개봉하지 않겠다는 극약처방을 내린 건 작은 영화를 홀대하는 영화시장에 경종을 울리려는 처절한 몸부림임을 이해못하는 바 아니다. 그런데 “‘시간’에 20만명은 들었으면 좋겠다.”고 몇번이나 강조하는 순간, 일련의 ‘극약처방’의 순수성은 의심받기에 충분했다.“1000만 관객시대가 슬프다.”고 말했던 그 역시 관객수의 산술적 의미에 얼마나 옭죄어 있는지를 확인하는 듯해 씁쓸하기 짝이 없었던 것이다.“이번 작품이 또 관객에게 외면당하면 한국에는 아예 영화를 팔지조차 않겠다.”는 폭탄발언은 또 뭔가. 내가 만든 물건, 구매의사가 시들한 곳에 내놓지 않는 건 내 마음이란 식의 협박 아닌가.

영화를 스스로 공산품 취급하는, 한국이 낳은 브랜드 감독의 고상한 오만이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2006-08-11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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