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반정부시위, ‘10년장기 권위주의 통치’가 원인

터키 반정부시위, ‘10년장기 권위주의 통치’가 원인

입력 2013-06-03 00:00
수정 2013-06-03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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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안처리때 ‘여론’ 묵살…주류판매 규제 강화도 자극”

터키에서 발생한 대규모 반정부시위의 ‘뿌리’는 현 에르도안 정권의 권위주의적인 통치에 있다는 외신들의 분석이 나오고 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2일(현지시간) 기사에서 이번 시위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총리가 집권 10년만에 최대 위기를 맞았다면서 자유로운 의사표현을 막는 현 정부의 권위주의적 통치행태가 사태를 악화시켰다고 지적했다.

이번 사태는 정부가 이스탄불 도심 탁심광장의 공원을 쇼핑센터로 재개발하려는 것에 반대하는 시민단체의 시위에서 처음 시작됐지만 이제는 정부의 지나친 개입에 대한 전 국가적인 분노로 번지고 있다고 신문은 보도했다.

건축역사학자인 우구르 탄옐리는 “진짜 문제는 탁심도 공원도 아닌 민주적인 의사결정 과정과 합의의 부재”라며 “터키는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은 다 하려는 총리를 두고 있다”고 지적했다.

터키 보스포러스대학의 정치학자 코라이 잘리스칸 교수는 “에르도안 총리는 너무 자신감이 넘치고 권위적인 정치인으로 누구의 말도 들으려 하지 않는다”며 “그는 터키가 왕국이 아니며 앙카라부터 이스탄불까지 혼자서 통치할 수 없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비판했다.

가디언은 또 공원 재개발 문제는 ‘빙산의 일각’이라며 최근 터키 정부가 보스포러스 대교 건설을 진행하는 과정에서도 대중의 의견을 묵살했다고 전했다.

에르도안 총리가 이끄는 집권 정의개발당(AKP)이 오후 10시부터 오전 6시까지 소매점에서 주류를 팔 수 없도록 하는 등 최근 주류 판매와 관련한 규제를 강화한 것도 이번 시위의 한 원인으로 분석된다.

이 같은 규제 법안이 에르도안 정권의 보수화·독재화하는 증거라며 터키 국민의 불만을 촉발시켰다는 것이다.

시위에 참여한 한 학생은 “(정부에) 진저리가 난다”며 “그들은 우리에게 숨쉴 틈조차 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가디언은 이번 시위가 공원문제를 넘어 정부의 대(對) 시리아 정책부터 주류 규제, 최근의 지하철 키스 시위에 걸쳐 좌우(左佑) 노소에 관계없이 터키 국가주의자부터 쿠르드족까지 모두를 합심하게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지난달 말 터키 수도 앙카라에선 시민들이 지하철역에서 공중도덕을 지키라는 안내방송에 나온 데 항의하기 위해 역내에서 공개적으로 키스하는 시위를 벌인 바 있다.

미국 CNN 방송도 시위자들의 말을 인용, 이들의 분노가 공원 재개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비슷한 분석을 내놨다.

시위참가자 야쿠프 에페 탄자이(28)는 “에르도안 총리는 나폴레옹 신드롬에 빠져있다. 그는 스스로를 술탄이라고 여긴다”며 “그는 이 같은 생각을 멈추고 자신이 총리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비난했다.

방송에 따르면 이날 군중들은 “힘을 모아 파시즘에 맞서자”는 구호를 외친 것으로 전해졌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현 정세를 ‘이슬람기반 정부와 비종교적(세속주의적) 중산층 간의 갈등’으로 묘사했다.

신문은 최근 정부가 주류 규제를 강화한 것 외에도 새 교량에 술탄의 이름을 붙이는 등 종교적인 움직임을 보여왔다며 이 때문에 비종교적인 젊은 층의 불만이 터져 나왔다고 풀이했다.

또 시위참가자 가운데 교수나 변호사, 경영 컨설턴트 등 전문직에 종사하는 젊은이들이 다수 참여했다고 덧붙였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번 시위를 터키 구성원들의 ‘정체성’ 문제와 연결지으며 ‘이슬람 대 세속주의’ ‘농촌 대 도시’의 갈등 구도가 표출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터키의 건국정신 계승자를 자처하는 세속주의 엘리트들은 보수 유권자의 지지를 기반으로 한 에르도안 정권이 들어선 이후 공공연하게 이슬람 종교를 표출하는 분위기가 조성된 것에 분노해왔다.

다만 에르도안이 대규모 유권자층인 종교적 보수주의세력에 의지하고 있기 때문에 권력을 내려놓을 위험성은 크지 않다고 NYT는 관측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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