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소송 여성 “5년간 가사노동 보상해 달라”
법원 “남편,아내에게 5만 위안 지급하라” 판결
“진일보한 판결” vs “주부의 가치 평가절하”
세계적으로 여성의 육아·청소 등에 경제적 가치를 부여하는 움직임이 확산되는 가운데 중국에서도 가사노동의 대가를 인정하라는 판결이 처음 나와 화제가 되고 있다. 법원이 이혼 소송 중인 남편에게 “전업주부 아내에게 보상금을 지급하라”고 명령한 것이다. ‘가사 노동을 돈으로 환산한 역사적 판단’이라는 긍정론과 ‘남성의 입장을 지나치게 반영한 결과’라는 비판론이 엇갈린다.24일(현지시간) BBC방송은 “중국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이혼 소송 중인 여성이 5년간 가사노동에 대한 대가로 5만 위안(약 850만원)을 받게 됐다’는 법원 판결을 두고 갑론을박이 한창”이라고 전했다.
남편 천모씨와 아내 왕모씨는 5년의 열애 끝에 2015년 결혼했다. 그러나 관계가 나빠져 2018년 별거에 들어갔다. 천씨는 줄곧 이혼을 요구했지만 왕씨는 “부부의 감정이 남아 있다”며 동의하지 않았다. 하지만 남편이 다른 여성과 살림을 차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아내는 마음을 바꿔 “그간 가사노동을 보상해 달라”며 소송을 냈다.
지난 20일 베이징팡산법원은 천씨에게 “혼인 기간 동안 전적으로 가사를 책임진 왕씨에게 5만 위안을 지급하라”고 판시했다. 법원은 최근 개정된 민법 1088조를 근거로 들었다. 배우자 중 한 명이 육아나 노인 돌봄 등 의무를 지면 상대방이 이를 보상해야 한다는 것이 골자다. 베이징 로펌 캉다의 한 변호사는 “중국 본토에서 집안일을 보상하라는 법원 판결은 이번이 처음일 것”이라고 말했다고 환구시보는 설명했다.
곧바로 이 사건은 웨이보(중국판 트위터)에서 6억회 이상 조회돼 논쟁거리가 됐다. 누리꾼들의 입장은 둘로 갈렸다. ‘이제 중국도 남녀평등에 한발 더 다가섰다’며 칭찬하는 이들이 있었지만, ‘5년간 노동의 대가로 5만 위안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자조도 상당했다. 왕씨가 받은 보상금이 우리 돈으로 매달 15만원 정도에 불과해서다.
유명 논평가는 “할 말이 없다. 전업주부의 일이 지나치게 과소평가됐다”며 “베이징에서 가정부를 고용하는 데도 1년에 5만 위안은 더 든다”고 지적했다. 한 여성도 “이번 사건을 봐도 알 수 있듯 중국에서 여성은 늘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있어야 한다. 결혼한 뒤에도 일을 포기하지 말고 자신만의 길을 가라”고 조언했다.
우리나라에서는 2018년 통계청이 처음 가사노동 가치를 산정했다. 2014년 기준 가사노동 시급은 1만 569원으로 당시 최저임금(5210원)의 두 배 수준이었다. 올해 최저임금 8720원을 적용하면 대략 1만 7000원 정도로 추산된다.
베이징 류지영 특파원 superryu@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