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가 미중 기술 패권에서 승리하기 위해 향후 5년간 인공지능·빅데이터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에 1조 4000억 달러를 집중 투자한다. 사진은 지난달 28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 폐막 기자회견에서 리커창 중국 총리가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는 모습. 중국정부망 캡처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중국공업정보화부는 향후 5년 동안 인공지능·이동통신·빅데이터 등에 최소 1조 4000억 달러(약 1684조원)를 투자하는 프로젝트를 지난 12일 발표했다. 이를 위해 베이징시와 상하이시 등 31개 중국 지방정부는 차세대 기술개발을 위해 올해에만 6조 6100억 위안(약 1124조원)에 이르는 투자를 표명했다.
리커창 중국 총리도 지난달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차세대 기술개발 캠페인은 공산당의 최우선 순위가 될 것”이라며 “이는 중국에 새로운 타입의 인프라를 제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리 총리의 이같은 언급은 불과 수개월 전과 비교해 중국 당국의 태도에 미묘한 변화가 발생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WSJ는 해석했다. 중국 지도부는 그동안 기존 하이테크 산업 육성책인 ‘중국제조 2025’에 대해서 서구권이 경계하는 것을 피하려 했기 때문이다.
중국제조 2025 정책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 기업에 보조금을 제공하고 외국 기업에 불리한 경쟁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라고 강한 거부감을 보였다. 독일 싱크탱크 메르카토르중국연구소(MERICS)의 캐롤라인 마인하트 애널리스트는 “중국제조 2025의 핵심은 외국 하이테크 부품을 국산으로 교체하는 것”이라며 “중국이 최근 추진하는 첨단기술 투자도 명확하게 주장하지는 않지만 그 목표는 변함이 없다”고 설명했다.
중국제조 2025 정책과 올 들어 나온 기술개발 촉진책은 유사하지만 특히 첨단기술에 특화하고 그 지향점도 광범위하다는 것이 다르다고 WSJ는 평가했다. 단순히 제조업이 아니라 중국 경제 전체에서 기술 혁신을 노리고 있으며 중앙정부 지출이 아니라 지방정부와 민간 부문의 투자가 중심이 되고 있다. 중국은 특히 5G 정비를 가장 중요시하게 여기고 있다.
5G는 사물인터넷(IoT)이라는 차세대 인터넷 연결 기기의 핵심인 만큼, 일상생활이나 제조업 전반을 변화시킬 잠재력을 갖고 있다.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중국은 연내 5G 기지국 수를 현재의 3배인 60만 곳으로 확대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반면 번스타인리서치 분석에 따르면 미국의 5G 기지국 수는 올해 1만 개에 그칠 전망이다. 중국 통신 대기업 3사는 지난 3월 5G 기지국 정비에 2200억 위안을 투입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또 중국의 이러한 막대한 투자가 기술패권을 차지하려는 강력한 의지 외에도 코로나19의 경제적 타격을 완화하는 경기부양책이라고 분석했다. 레스터 로스 중국 주재 미국상공회의소 정책위원장은 “중국은 여전히 계획경제 체제가 아주 강하다”며 “이번 기술 투자 계획은 경제 활력의 중요한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