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류 미비 이민자 고통 누군가는 말해야… 옳은 일이라 두렵지 않았다”

“서류 미비 이민자 고통 누군가는 말해야… 옳은 일이라 두렵지 않았다”

입력 2013-11-28 00:00
수정 2013-11-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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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방 멈춰 달라”며 오바마 연설 끼어든 한인 청년 홍주영씨

“옳은 일이었기에 두렵지 않았습니다.”

지난 25일(현지시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샌프란시스코에서 이민법 개혁 관련 연설을 하는 도중 “이민자 1150만명의 추방을 멈춰 주세요”라고 소리치며 설전을 벌였던 한인 남성 홍주영(23)씨는 26일 서울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당시의 심정을 이렇게 설명했다. 11세 때 미국에 건너온 홍씨가 “한국말을 잘 하지 못한다”고 해 인터뷰는 영어로 진행됐다. 홍씨는 지난해 UC버클리대를 졸업하고 올해 샌프란시스코주립대 정치학 석사과정에 입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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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주영씨
홍주영씨
→오바마 대통령에게 소리칠 때 두렵지 않았나.

-세계에서 가장 힘이 센 미국 대통령에게 소리치는 건 분명 떨리는 일이었다. 하지만 ‘서류 미비(불법체류) 이민자’로서 겪은 개인적 고통과 추방되고 억류된 이민자들의 절규가 용기를 줬다.

→시민들의 반응은 어떤가.

-대부분 지지한다는 응원이 답지하고 있다. 사람들은 내가 진실을 말한 걸 알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 들어 역대 어느 행정부보다 많은 이민자가 추방됐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소리친 것이다.

→오래전부터 이민자 추방 반대운동에 앞장서 온 것으로 아는데 어디서 그런 용기가 생겼나.

-서류 미비 이민자로서 나는 제대로 된 직업이나 운전면허증을 가질 수 없고 정부로부터 금융지원도 받을 수 없다. 이런 고통에 대해 누군가는 말해야 한다.

→추방되는 게 두렵지 않나.

-물론 두렵다. 한인들은 이런 문제에 대해 부끄러워하고 말하려 하지 않는데 그러면 안 된다. 당당히 자신을 드러내서 같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

→본인이 서류 미비 이민자 신분이란 건 언제 알았나.

-고등학교 3학년 때였다. 우울했다.

→미국에는 어떻게 오게 됐나.

-서울 효창동에 살면서 리라초등학교에 다니는 등 중산층 가정에서 살았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로 부모님이 운영하던 식당이 파산했고 설상가상 부모님이 헤어졌다. 2001년에 어머니가 누나와 나를 데리고 미국에 관광비자로 와서 체류기간을 넘기게 됐다. 현재 어머니(58)와 누나(28)는 식당 종업원 등 고된 일을 하고 있다. 2년 전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불법체류자라 미국으로 다시 들어올 수 없다는 생각에) 갈 수 없었다.

→앞으로의 계획은.

-이민자의 존엄과 정의를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이다. 긴 싸움이 될 것이다.

워싱턴 김상연 특파원 carlos@seoul.co.kr

2013-11-28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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