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무장 시위대를 막아선 ‘러시아판 천안문 광장’ 소녀

중무장 시위대를 막아선 ‘러시아판 천안문 광장’ 소녀

이기철 기자
이기철 기자
입력 2019-08-08 12:00
수정 2019-08-08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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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장 시위 경찰대 앞에서 러시아 헌법을 읽는 올가 미시크의 모습이 세계적으로 널리 공유되고 있다. BBC 캡처
무장 시위 경찰대 앞에서 러시아 헌법을 읽는 올가 미시크의 모습이 세계적으로 널리 공유되고 있다. BBC 캡처
도로에 앉은 가녀린 소녀가 헬멧을 착용하고 곤봉을 손에 든 시위 진압 경찰대 앞에서 헌법을 큰 소리로 읽는 모습의 사진이 세계적으로 큰 화제가 되고 있다. 반팔 티셔츠 차림의 소녀는 위축되거나 겁먹지 않고 당당해 보인다.

주인공인 여고 졸업반인 올가 미시크(17)가 러시아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 되고 있다고 BBC가 7일(현지시간) 전했다. 일부는 이 사진을 1989년 베이징에서 탱크의 진로를 막아선 톈안먼 광장의 ‘탱크 맨’과 비교하기도 한다.
1989년 톈안먼 민주화 시위 당시 톈안먼 광장으로 진격하는 전차를 막아선 일명 ‘탱크맨’은 톈안먼 사태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주인공이다.  CNN 캡처
1989년 톈안먼 민주화 시위 당시 톈안먼 광장으로 진격하는 전차를 막아선 일명 ‘탱크맨’은 톈안먼 사태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주인공이다.
CNN 캡처
올가는 “요즘 러시아 상황은 매우 불안정합니다”며 “당국은 평화시위를 해산하려고 무장군인 배치를 강화하는 것을 보면 매우 겁먹은 것이 분명합니다”고 말했다.

모스크바에는 오는 9월 시의회(두마) 선거를 앞두고 야당 성향의 무소속 후보들의 출마 자격을 정지하면서 수주째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충성스러운 선거 관리 당국은 야권 후보들이 등록에 필요한 지지 서명을 확보하지 못했다며 출마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선거 당국의 이런 조처에 항의하는 계속되면서 올가도 참여했다. 올가는 다가오는 선거에 관한 것이 아니라 러시아 국민의 인권에 관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9월부터 모스크바주립대에서 저널리즘을 전공할 예정이다. 그는 “알렉세이 나발니와 다른 야권 지도자들에 대해서는 중립적이지만 그들이 하려고 하는 것은 지지한다”고 말했다.

모스크바 외곽에서 태어나 자란 올가는 독서를 좋아한다. 어두운 미래나 전체주의에 대해 쓴 조지 오웰과 올더스 헉슬리와 같은 작가를 특히 좋아하는 평범한 소녀이다. 올해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그는 학교 성적도 우수하고, 시사 문제에 관심이 많다.
올가는 지난달 27일 허락받지 않은 불법 집회에 참가해 중무장한 러시아 진압 경찰 앞에서 1993년 러시아 헌법을 꺼집어 내어 읽었다. “제4장을 읽었습니다. 평화적 집회 및 시위 권리, 참정권에 관한 조항, 언론의 자유 등에 관한 것입니다.” 올가는 사람들의 자신의 소리를 들을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는 “갑자기 조용해지더니 사람들이 박수를 치고, 더 읽으라고 요청해왔습니다. 기자들과 카메라가 달려왔습니다”라고 당시 상황을 전해줬다. “그리곤 진압 경찰이 시위대를 옆쪽으로 밀어내자 저는 바닥에 앉아서 우리의 헌법적 권리를 다시 읽었습니다.” 이런 올가의 사진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공유되며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헌법을 읽어준 그날 올가는 지하철을 타러 가다가 체포됐다. 그날 1000명 이상이 체포됐다. 올가는 12시간 뒤에 풀려났지만 2만루블(약 37만원)의 벌금이 부과됐다. 올가는 지난 3개월 동안 4번 체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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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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