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가면 못오나?” “음주운전 전력은?”…美한인사회 ‘공포’

“한국가면 못오나?” “음주운전 전력은?”…美한인사회 ‘공포’

입력 2017-02-23 09:50
수정 2017-02-23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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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초강경 이민정책’에 한인사회 ‘패닉’…‘이민자 핫라인’ 문의 쇄도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주재 LA총영사관에서 출입국·이민 업무를 맡은 박상욱 법무 영사는 지난 17일 온종일 휴대전화 벨 소리에 시달려야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서류 미비자(불법체류자) 단속과 추방을 강화하는 새로운 반(反) 이민 행정 정책을 예고하면서 추방 공포감에 사로잡힌 한인 서류 미비자들로부터 걸려온 전화였다.

이들 대부분은 LA 총영사관이 홈페이지에 ‘미국 행정부 이민정책 강화 관련 유의사항’을 보고 전화를 한 것이라고 박 영사는 22일(현지시간) 전했다. 이 가운데는 동부 매사추세츠 주의 보스턴에서 걸려온 전화도 있었다는 것.

한인 이민자 보호 시민단체인 LA 민족학교와 시카고 하나센터, 버지니아 주 미주한인교육연합회 등에 설치된 ‘이민자 핫라인’도 반이민 행정각서 발효 후 문의 전화가 쇄도하고 있다.

LA 민족학교 정상혁 핫라인 담당 코디네이터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지난주 하루 평균 20여 통의 문의전화를 받았다”면서 “LA뿐만 아니라 오하이오 주와 뉴욕에서 걸려온 문의전화도 있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불법체류자 단속과 추방을 강화하는 새로운 반이민 행정각서를 존 켈리 국토안보부 장관 명의로 발표하자 미국 내 한인사회가 ‘단속·추방 공포’에 휩싸였다.

특히 이번 행정각서는 미국 내 이민행정 집행력과 국경단속을 강화하는 내용이다. 단속과 추방에 방점이 찍히면서 이전 이민 행정명령과는 다른 무자비한 조치가 뒤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사소한 교통위반도 단속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

미국의 이민 싱크탱크인 이민연구센터에 따르면 2014년 기준 미국 내 서류 미비자 수는 1천100만 명으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한인 서류 미비자 수는 국토안보부 집계로 2011년 23만 명이었으나, 2014년 16만9천 명으로 줄었다.

LA 민족학교에 따르면 한인 서류 미비자들은 대부분 LA와 뉴욕 등 한인 밀집지역에 몰려있으며, 이들 대부분은 대리운전이나 음식점 등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상혁 법무 영사는 “한인이 가장 많이 사는 LA를 비롯한 캘리포니아 남부에 거주하는 한인 서류 미비자 수는 5만∼6만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캘리포니아 남부의 한인 54만여 명 가운데 10% 가까이가 서류 미비자인 셈이다.

LA 총영사관과 LA 민족학교에 걸려온 문의전화들은 대부분 음주 운전이나 가정폭력, 경범죄 등 전과가 있는 사람들로부터 걸려온 것이다. 여기에는 서류 미비자들뿐만 아니라 영주권도 상당수인 것으로 파악됐다.

영주권자들 가운데 “한국에 갔다가 미국 입국할 때 괜찮겠냐”는 질문이 압도적으로 많았다고 LA 민족학교 정상혁 코디네이터는 전했다.

실제로 한인사회에서는 트럼프 행정부가 이번 반이민 행정각서 발효로 대대적인 불체자 추방 작전에 나서겠다는 ‘선전포고’로 받아들이고 있다.

앞서 이민 당국은 지난 9일 미전역 최소 11개 주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불체자 검거 급습작전을 진행해 이민자 680여 명을 체포한 바 있다. 단속요원들의 급습작전은 추방 대상 불법체류 이민자의 가정이나 직장을 급습해 체포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지난 9일 불체자 급습에서 한인 임 모(25) 씨도 캘리포니아 남부의 직장에서 근무하던 중 단속 요원들에게 붙잡혀 현재 구치소에 수감돼있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는 새로운 반이민 행정명령 시행을 위해 세관국경보호국(CBP) 직원 5천 명, 이민세관단속국(ICE) 요원 1만 명을 신규 고용하라고 지시하고 단속반원들에게 부여하는 체포 및 구금권한도 대폭 확대했다.

조지아 주에 사는 20대 한인은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과거 음주 운전으로 벌금을 낸 적이 있으며 현재 비자가 만료된 상황”이라며 “단속요원들이 언제 닥칠지 너무 불안하다”고 밝혔다.

“아예 한국으로 돌아가겠다”고 결심한 서류 미비자들도 늘고 있다. 이들은 이민 1세대들이다.

LA 총영사관 김보준 경찰 영사는 “최근 경미한 전과 기록이 있는 서류 미비자들로부터 ‘이제 미국에서 살 수 없으니 한국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얘기를 몇 차례 들었다”고 귀띔했다.

하지만 미국 사회에 동화된 1.5세대와 2세대 젊은 층에서는 이민 단속에 따른 추방 공포의 강도는 훨씬 높다고 LA 이민법 전문 변호사들은 전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영주권과 시민권을 서둘러 따려는 한인들이 많아지면서 이민법 변호사들이 ‘때아닌’ 특수를 누리고 있다는 소문도 나오고 있다.

LA 시 인근에 사는 이 모(49) 씨는 “그동안 시민권 신청을 미뤄왔는데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서둘러 시민권 신청을 했다”면서 “하지만 시민권이 제때 나올지 걱정스럽다”고 했다.

한편, LA 민족학교를 비롯한 한인 이민단체들은 이민자들이 추방과 구금 위기에 처했을 때 행동요령이 적힌 가이드라인 7천여 장을 LA와 시카고, 버지니아 주의 한인 교회와 성당을 중심으로 배포하고 있다.

미국 시민자유연맹(ACLU)도 불안에 떠는 서류 미비자들의 도움 요청이 빗발치자 홈페이지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트위터를 통해 영어와 스페인어로 대응 방법을 홍보했다.

‘만약 이민세관단속국(ICE) 요원이 집 문 앞에 나타나면’으로 시작하는 대응 홍보 글에서 ACLU는 ‘문을 열지 말고 조용히 있으라. 그럴 권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 집에 왜 왔는지 단속요원에게 묻고, 의사소통이 안 되면 통역을 요청하라고 권유했다. ICE 요원이 집에 들어가겠다고 하면 판사가 서명한 영장이 있는지를 묻고, 영장을 창문 또는 문틈으로 건네받아 보라고 ACLU는 덧붙였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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