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 상승은 경제 악재’ 경제 통념과는 반대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감산합의에 따른 국제유가 상승이 세계 경제를 일으키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유가 상승이 미국 일자리를 늘리고 부채에 허덕이는 산유국 재정에 도움이 되며 선진국의 디플레이션(가격 하락) 문제도 해결하는 등 글로벌 경제에 요긴한 역할을 하리라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우선 국제유가 상승을 가장 반기는 것은 미국이다.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아와 함께 세계 3대 산유국인 미국은 저유가 현상이 장기화하면서 원유업계 투자가 줄고 산유량도 하루평균 100만 배럴(bpd)이 줄어드는 현상을 겪었다.
하지만 최근 OPEC 감산합의를 앞두고 기대감 속에 유가가 오름세를 타면서 업계 투자가 다시 늘어났으며, 향후에는 이 같은 흐름에 불이 붙으면서 일자리도 늘어날 전망이다.
일자리 증가와 임금 상승이 이어지면서 결과적으로 미국 경제 성장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WSJ은 설명했다.
저유가에 신음해 온 산유국들도 쾌재를 부르고 있다.
러시아, 브라질, 나이지리아를 비롯해 중동, 북아프리카의 산유국들은 2년에 걸친 저유가로 재정적자와 부채 증가에 시달려왔다.
사우디는 지난해 재정적자가 GDP의 15%에 달하는 980억 달러로 건국 이래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막대한 오일머니를 바탕으로 국민에게 보조금을 마음껏 지급하던 바레인, 오만 등 중동의 산유국들은 연료 보조금을 삭감하고 세율을 올리는 등 적자를 메울 방안을 찾기도 했다.
하지만 유가가 오르면서 정부 부채 문제를 덜 수 있게 됐고, 정부 지출도 늘어날 전망이다.
골드만삭스의 제프리 쿠리 애널리스트는 “더 높은 유가가 경제 성장에 좋은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연합(EU)과 일본 등 선진국은 유가가 물가를 견인하면서 디플레이션 문제를 해결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일본은 10월 근원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지난해 같은 달보다 0.4% 하락하는 등 디플레이션 현상을 겪고 있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10월 물가상승률도 0.5%로, 채 1%에 미치지 못했다.
브라운 브라더스 해리만 마크 챈들러 화폐전략부문장은 “유가 상승이 대다수 국가의 디플레이션에 종지부를 찍을 것”이라며 “일본의 경우에도 가능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국제유가가 오르면 소비자의 구매력이 떨어지고 세계 경제에는 악영향을 준다는 것이 기존 경제 통념이었지만, 올해 초 배럴당 20달러까지 떨어졌던 기록적인 저유가를 경험하면서 이 같은 인식이 바뀌었다.
유가가 지나치게 높으면 결국 글로벌 경제에 타격이 되겠지만, 적정선만 유지한다면 원유 산업의 활성화를 돕고 세계 경제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라이언 토드 도이체방크 증권 애널리스트는 “많은 사람이 (유가가) 배럴당 60달러 언저리인 것이 가장 좋다고 본다”며 “세계 경제에 타격을 줄 만큼 높지는 않으면서도 원유 생산업체와 미국 정유업체 등이 비즈니스 모델을 유지하기에는 적당히 높은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관건은 내년부터 시작되는 감산이 제대로 이행되는지 여부라는 지적도 나왔다. 산유국들은 지난 1998~1999년, 2001년, 2008년에도 감산합의를 해놓고 제대로 지키지 않은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다.
국제금융센터 오정석 원자재팀장은 “감산을 하지 않아도 처벌규정이 없고, 불이익도 없어서 처음에는 잘하는 것처럼 하다가 흐지부지 될 수 있다”면서 “과거에도 국가별 쿼터를 제대로 지킨 적이 없다”고 말했다.
다만, 이번에는 모니터링 기구를 만들어 이행상황을 점검해 발표하겠다고 공언했으니 과거와 달라질 가능성도 있다.
SK증권 김동원 애널리스트도 “OPEC 합의가 이뤄졌다 해도 신뢰 여부는 미지수”라면서 “OPEC은 역사적으로 2개월 감산후 6개월 증산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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