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 대세론’ 턱밑 추격했으나 뒤집기에는 역부족
미국 민주당 대선판을 송두리째 뒤흔들어놓았던 ‘샌더스 돌풍’이 사실상 동력을 잃었다.선두주자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6일(이하 현지시간) 민주당 대선후보 지명에 필요한 ‘매직넘버’(전체 대의원의 과반수)를 달성하면서 경선 레이스에 실질적 종지부를 찍었기 때문이다.
지난 넉 달여간 이어진 숨 가쁜 레이스 끝에 샌더스가 얻은 대의원 수는 1천569명에 그쳤다. 클린턴이 확보한 대의원수 2천383명의 66%에 불과하다. 당내 지도급 인사들이 주로 해당되는 슈퍼대의원 확보경쟁에서는 무려 ‘571대 48’의 현격한 격차를 보였다. 당심(黨心)이 클린턴 쪽으로 기울어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다.
이로써 워싱턴 주류정치의 개혁을 부르짖으며 진보적 어젠다를 앞세웠던 샌더스발(發) ‘정치실험’은 결국 미완의 상태로 막을 내리게 됐다.
물론 샌더스가 이대로 경선을 중단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7일(이하 현지시간) 캘리포니아를 비롯한 6개 주 경선과 14일 워싱턴DC 프라이머리까지 경선레이스를 완주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해왔기 때문이다. 특히 다음 달 전당대회에서 클린턴을 찍기로 했던 슈퍼대의원의 마음을 돌려놓을 자신도 있다고 공언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클린턴의 매직넘버 달성으로 ‘판’이 이미 끝나버린 상태여서 앞으로의 경선이 갖는 실효적 의미는 없다고 볼 수 있다.
샌더스가 비록 ‘역부족’이었지만 그가 민주당, 나아가 미국 정치에 드리운 파장은 메가톤급이었다고 평가할만하다.
무소속 출신에 전국적 지명도나 당내 기반이 전혀 없는 75세의 노(老) 정객인 샌더스는 작년까지만 해도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언더독’(underdog·이길 가능성이 없는 후보)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민주적 사회의주의자’를 자처하는 샌더스는 민주당의 주류정치가 쉽게 포용하기 힘든 좌파적 어젠다를 표방하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샌더스는 첫 경선인 아이아와 코커스에서 사실상의 무승부를 기록한데 이어 지난 2월9일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에서 압승을 거두는 대이변을 일으키면서 ‘아웃사이더 돌풍’을 점화시켰다. 경선의 최대 분수령이었던 ‘슈퍼화요일’(3월1일) 경선에서 패하면서 기세가 꺾이기는 했지만, 샌더스 돌풍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 생명력을 과시했다.
‘러스트 벨트’(쇠락한 제조업지대)를 중심으로 미국 주류정치와 경제상황에 실망하고 분노하는 백인들과 청년층을 끌어안으면서 경선 막바지까지 ‘힐러리 대세론’을 끊임없이 위협했다.
이제 당 안팎의 시선은 샌더스가 당의 통합과 대선승리라는 대승적 목표 아래 클린턴을 지지할 것이냐에 쏠리고 있다. 2008년 정치 신예였던 버락 오바마에게 피했던 클린턴은 경선을 마무리한 뒤 오바마에 대한 공식 지지를 선언했다. 이에 따라 샌더스도 일단 경선을 완주하고 나서 클린턴을 공식 지지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그러나 샌더스가 애초부터 민주당 소속이 아닌데다가, 당의 통합보다는 자신의 진보적 어젠다를 관철하는 데에만 치중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어 클린턴을 확실히 지지할지는 물음표라는 시각도 없지 않다.
일단 샌더스로서는 남은 경선 과정에서 최대한 선전을 해 ‘몸값’을 높이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어젠다를 대선공약에 반영하는데 역점을 둘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7일 6개 주 경선의 최대 하이라이트인 캘리포니아 주 경선에 ‘올인’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샌더스가 클린턴을 지지한다고 선언하더라도 그를 따르는 열성 지지층이 반드시 클린턴에게 표를 던진다는 보장이 없다는 점이다. 특히 샌더스의 지지층인 백인과 청년 진보층의 5분의 1가량이 클린턴이 대선 후보가 될 경우 트럼프 지지 쪽으로 돌아서겠다는 여론조사도 나와 클린턴 쪽을 바짝 긴장시키고 있다.
결국 샌더스 자체보다는 ‘샌더스 돌풍’을 낳은 민주당 유권자들의 불만과 분노를 어떻게 달래느냐가 클린턴과 민주당이 당면한 가장 큰 숙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합뉴스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