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1983년 KAL 격추 2달후 ‘蘇, 오인격추’ 견해 日에 표명”

“美, 1983년 KAL 격추 2달후 ‘蘇, 오인격추’ 견해 日에 표명”

입력 2015-12-25 01:16
수정 2015-12-25 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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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고관, 日외교당국자에 밝혀…일본 외무성 외교문서 공개로 드러나아사히 “美 ‘민간기인 줄 알면서 공격했다’고 소련 비난했지만, 진상 알았다”

1983년 9월 소련이 대한항공기를 격추한 사건의 대략적인 진상을 미국이 2개월 정도 지난 시점에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는 정황이 드러났다.

아사히(朝日)신문 등 일본 언론은 이 사건이 일어난 지 2개월여 흐른 뒤 미국 정부 고관이 일본 정부 당국자를 만나 ‘소련이 대한항공기를 미국 정찰기로 오인해 소련 영공에서 공해상으로 막 나가려던 참에 격추했다’고 말한 기록이 공개됐다고 24일 일제히 보도했다.

이런 기록은 이날 일본 외무성이 공개한 외교 문서에서 확인됐다.

보도에 따르면 1983년 11월 14일자로 작성돼 ‘극비’로 분류된 메모는 ‘소련 측은 미국 정찰기 항적(航跡·배나 항공기가 지나간 자취)에 약 15분 후에 들어온 대한항공기를 미국기로 오인했다’는 미 정부 고위 관료의 발언을 담고 있다.

이 미국 관료는 ‘소련의 레이더 3대 중 1대가 작동하지 않았다’고 소련 측이 오인한 이유를 설명했으며 ‘미사일이 2발 발사됐고 대한항공기가 11분간 나선형으로 회전하며 급하강하다가 추락했다’고 언급한 것으로 문서에 기재돼 있다.

교도통신은 미국 관료는 ‘비행기록장치가 소련 영해 안에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극비의 수단으로 회수를 시도하겠다’는 발언도 한 것으로 기록됐다고 전했다.

하지만 비행기록장치는 이미 소련이 회수한 상태였으며 미국과 일본은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장치를 찾으려 수색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개된 외교 문서와 관련해 다수의 일본 언론은 미국이 조기에 일본에 상세한 정보를 공유했다고 평가했다.

이와 달리 아사히신문은 미국이 사건 직후 ‘민간기인 것을 알면서도 공격했다’고 소련을 비난했는데 실제로는 ‘소련이 미국 정찰기로 오인해 격추했다’며 거의 정확하게 사실을 파악하고 있었던 셈이라고 해석했다.

이 신문은 냉전으로 미국과 소련의 대립이 격하던 시기에 미국이 대외적으로 정보 조작을 하기 위해 발버둥쳤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문서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메모가 작성될 당시 일본 외무성 인사과장이었으며 나중에 최고재판소(대법원) 판사를 지낸 후쿠다 히로시(福田博·80) 씨는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확실히 나의 기록이다. 미국 정부의 상당한 고관에게서 들은 내용이지만 상대가 누군지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당시 일본 정부도 소련이 민간기를 의도적으로 노렸다는 견해를 취했으나 이에 관해 후쿠다 씨는 “민간기라고 알고서 격추할 정도로 소련이 바보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핵 전쟁이 벌어질 수 있다”고 회고했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국제민간항공기구(ICAO)는 ‘대항항공기는 항법 실수를 인식하지 못한 채 정찰기로 오인됐다’는 재조사 결과를 1993년 공표했다.

그러나 조종사가 장시간 실수를 인식하지 못한 이유를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다고 통신은 덧붙였다.

1983년 9월 1일 미국 뉴욕에서 출발해 알래스카의 앵커리지를 거쳐 서울로 가던 대한항공 007편 보잉 747 여객기는 소련 전투기의 미사일 공격을 받고 사할린 서쪽 해상에 추락해 승무원 29명과 승객 240명 등 탑승자 269명 전원이 사망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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