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유엔 연설…강대국 탐욕 비판·약자보호 강조

교황, 유엔 연설…강대국 탐욕 비판·약자보호 강조

입력 2015-09-26 08:37
수정 2015-09-27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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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시스 교황 ⓒ AFPBBNews=News1
프란시스 교황 ⓒ AFPBBNews=News1
미국을 방문 중인 프란치스코 교황은 25일(현지시간) 제70차 유엔총회에서 행한 연설에서 물질적 이득을 쫓는 강대국들의 행태를 비판하면서 ‘약자 보호’와 ‘환경 정의’를 촉구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날 오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행한 연설에서 평화와 개발, 성평등, 교육, 환경, 군축 등 유엔이 다루는 민감한 이슈들을 광범위하게 언급했다.

교황은 세계평화와 인권에 대한 유엔의 기여를 높이 평가하면서도, 국제사회의 분쟁과 불평등이 해결되지 못하는 것에 가감 없는 비판을 가했다.

역대 교황 가운데 다섯 번째로 유엔을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날 연설에서 중동 문제에 대한 평화적 해법을 도출하지 못하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를 질타했다.

우크라이나, 시리아, 남수단의 분쟁을 둘러싼 안보리의 이견도 거론하면서 “인간이 분파적 이해관계 보다 우선해야 하는데도, 후자가 더 정당성을 갖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안보리에 더 공정한 체제가 도입돼야 한다고 지적하는 등 유엔 개혁 문제가 언급되자 총회장을 메운 193개 회원국 대표들 사이에서는 박수가 터져나왔다.

교황은 ‘강자의 군림’도 거침없이 비판했다.

교황은 “국제 금융기구들은 국가들의 지속 가능한 개발에 신경써야 하고, 이들 국가가 억압적인 대출시스템의 희생양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 같은 시스템은 사람들을 더 심한 가난과 배제, 종속을 만들어내는 구조로 몰아넣는다”면서 “모든 종류의 남용과 고리대금업(usury)은 제한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환경 문제에 대해서도 강대국들을 향해 “권력과 물질적인 번영을 위해 이기적이고, 끝없이 돈에 목말라하고 있다”면서 “이는 이용가능한 천연자원을 잘못 사용하게 하고, 약하고 빈곤한 계층을 더욱 소외시킨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런 경제적, 사회적 배척는 ‘중대한 죄’라고 말했다.

교황은 지구를 ‘창조주로부터 온 사랑의 과실’로 표현하면서 “인류에게는 환경을 파괴하거나 남용할 권리가 없다”고 단언했다. 모든 국가가 공평하게 환경의 혜택을 누려야 한다는 뜻에서 ‘환경권’도 언급했다.

교황은 “생태의 위기와 생물학적 다양성에 대한 대규모 파괴가 인류의 존재를 위협할 수 있다”면서 12월 유엔 기후변화회의에서 환경 문제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기를 희망했다.

아르헨티나 출신인 교황의 연설은 스페인어로 진행됐으며, 곳곳에서 빈곤국에 대한 포용이 엿보였다.

교황은 빈곤층도 교육의 권리와 더불어 ‘3L’, 즉 주거(lodging)·노동(labor)·토지(land)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고 역설했다.

낙태 문제에 대해서는 “(생명은) 모든 단계에서 절대적으로 존중돼야 한다”고 말했고, 남성과 여성에게는 ‘타고난 차이(natural difference)’가 존재한다고 말하는 등 가톨릭의 교리에 충실한 입장을 보였다.

또 서구의 자유로운 사고방식이 비(非)서구 지역에는 변형된 형태의 라이프스타일을 강요함으로써 ‘사상적 식민지화’를 시키고 있다고 말하는 등 동성결혼 등을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입장을 취했다.

이란 핵합의에 대해서는 “합의가 지속되고 효과를 내는 동시에 당사국 간 협력을 통해 희망하는 결과를 가져왔으면 한다”고 지지를 표명했다.

교황은 이외에도 시리아·이라크의 이슬람 극단주의자에 탄압받는 기독교도의 보호, 핵무기의 전면 금지, 인신매매 금지, 소녀들에 대한 교육에 각국 정부 지도자들이 나서 달라고 당부했다.

특히 마약밀매에 대해서는 “수백만 명의 목숨을 소리없이 죽이는 것”이라고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연설에 앞서 교황은 유엔본부에 도착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부인 유순택 여사의 영접을 받고 방명록에 서명했다.

반 총장은 교황의 겸손과 인간미가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면서 “영적으로 이끌어주고 인류에 대한 사랑을 보여주신데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교황은 400여 명의 유엔 직원을 대면한 짧은 연설에서 “서로 존중하라”고 당부하고, 이들의 노고로 각 분야의 유엔 활동이 가능하다며 감사를 표시했다.

교황의 도착에 앞서 유엔본부에는 역사상 처음으로 교황청 깃발이 게양됐다.

교황은 유엔 연설 후 9·11테러 추모박물관으로 이동해 미사를 집전하고, 희생자 유가족을 위로했다.

교황은 할렘 학교를 방문한 데 이어 오후 6시30분께부터 포프모빌을 타고 뉴욕의 ‘허파’인 센트럴파크를 통과하는 도심 퍼레이드를 벌였다.

미리 공원에 입장해 교황의 행렬을 기다리고 있던 수만 명의 시민이 일제히 환호하면서 교황의 뉴욕 방문은 절정에 달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날 저녁 매디슨 스퀘어가든에서 야외 미사를 집전하는 것으로 뉴욕 일정을 마치고 마지막 행선지인 필라델피아로 향한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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