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과 일본의 과거사 그림자, 그리고 야스쿠니의 망령

독일과 일본의 과거사 그림자, 그리고 야스쿠니의 망령

입력 2015-05-08 09:30
수정 2015-05-08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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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서 한·일·독 정치인·학자·시민단체 종전기념 大토론

그들은 꼬박 열 시간 동안 한 자리를 지켰다. 흐트러짐 없이 군국주의 파시즘과 나치즘의 광기 어린 과거사와 마주하면서다. 그 과거는 오늘의 일본을 비추는 거울이자 내일로 향하는 독일이 경계를 늦출 수 없는 너울이다.

독일 신사회미술협회(nGbK) 주최로 베를린에 있는 이 단체 건물에서 7일(현지시간) 열린 세미나 주제는 ‘야스쿠니 신사의 독일 참나무’였다. 토론자로 나선 한국, 일본, 독일의 정치인, 학자, 비정부기구(NGO) 활동가와 교포 등 청중 90여 명에게도 낯선 타이틀이었다.

범상치 않은 이 제목은 1970년 당시 요한네스 슈타인호프 독일 공군 중장이 선물한 야스쿠니 경내 식수에서 연원했다. 독일 해군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고서 야스쿠니의 은행나무 묘목 세 그루를 가져와 킬 군항의 높이 85m 위령탑 옆에 심었고, 그 답례로 참나무를 일본에 줬다. 나치에 앞장서 충성하고도 전후에 출세를 거듭한 장성이 선물한 나무가 야스쿠니 안에 심어진 것이다.

일반인들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이 이야기는 이날 토론회의 부제 ‘종전 70주년 그리고 동아시아와 유럽의 끝나지 않은 과거의 그림자’를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다.

이 예화를 들려준 즈시 미노루 ‘야스쿠니 불행에 저항하는 평화의 빛’ 공동대표는 작년 8월 15일 야스쿠니 경내에 전쟁 시기 나치 군복 차림으로 하켄크로이츠(나치 상징) 깃발을 든 일본인 코스플레이어가 등장한 사실도 꺼냈다. “나치를 위령하러 왔다”고 한 그를 야스쿠니신사는 쫓아내지 않았다는 점에 그는 주목했다.

즈시 대표는 또 패망 일본의 점령통치기 미국의 더글러스 맥아더 최고사령관에게 야스쿠니신사의 존치를 진언한 당시 주일 바티칸 공사대리 브루노 비터 신부는 독일인이었다고 전했다.

독일 좌파당의 토비아스 퓔리거 부당수는 “우리더러 과거사 청산을 잘했다고들 말하지만, 독일 내에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면서 나치 패망을 독일 해방으로 공식적으로 선언한 것은 1985년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 당시 대통령이 처음이었음을 되짚었다.

독일(獨日)의원연맹 회장을 맡고 있는 질비아 코팅-울 녹색당 연방의원은 나치 전범을 단죄한 뉘른베르크 재판 이후 한 세대가 지나서야 나치 동조자들에 대해 책임을 물을 수 있었다며 나치 전력의 쿠르트 게오르크 키징거 전 총리가 총리에 올랐던 점도 꼽았다.

1966년부터 69년까지 재임한 키징거는 이미 성숙한 29세에 나치당원이 되고 나서 2차 대전 때 후방에서 심리전을 담당한 전력 때문에 그의 취임은 지식인들로부터 큰 저항을 받았다.

동아시아 평화·인권운동가인 서 승 리쓰메이칸대 석좌교수는 “독일은 과거를 잘 청산하며 착하게 살고, 일본은 반대인 것으로만 이해하지만 뿌리는 하나라고 생각한다”고 말하고 전후 미국이 반공 블록 전략으로 유럽에선 화해를, 아시아에선 대결을 각각 추구한 것이 그런 대칭적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주장했다.

토론자들은 그러나 앙겔라 메르켈 총리를 위시한 독일 지도자들의 과거사 반성이 이어지는 데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며 일본의 변하지 않는 야스쿠니 망령을 일제히 겨냥했다.

이희자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공동대표는 “패전의 아쉬움에 목말라하면서 전쟁을 다시 하고 싶어하는 아베 정권 아니냐”면서 “야스쿠니는 가해자가 희생자를 영웅으로 만들어 가해의 본질을 숨기는 곳이며, 국가에 의한 침략신사가 종교시설로 둔갑한 모순덩어리”라고 일갈했다.

이 대표는 태평양전쟁에 징용돼 숨지고서 야스쿠니에 합사된 아버지를 야스쿠니에서 빼달라고 하는 소송으로 유명하다.

같은 처지의 합사 취소소송을 진행한 스가와라 류켄 일본 불교종파 정토진종 승려는 “우리 일본인 유족들에게 야스쿠니와의 싸움은 면할 수 없는 일본인으로서의 죄에 대해 책임지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재승 건국대 교수는 “본질적으로 야스쿠니의 정신은 침략주의이고, 그에 대한 참배는 저강도의 전쟁선동”이라면서 “그런 점에서 야스쿠니는 제국주의의 판타지”라고 비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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