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계 “시민운동 이정표…국민 힘 무시하면 안 돼”
대만 당국이 군기 교육을 받던 사병의 의문사 사건과 관련, 국민의 거센 반발을 산 끝에 결국 백기를 들었다.대만 국방부는 지난달 4일 타오위안(桃園)현의 군부대에서 숨진 훙중추(洪仲丘·24) 하사의 사인을 ‘타살’로 수정한 사망증명서를 유족에게 전달했다고 대만 중국시보 등이 5일 전했다. 가혹행위 의혹 등이 제기된 이번 사건이 발생한 지 32일 만이다.
군 당국은 지금까지 이 사건과 관련, 두 차례나 사인을 바꿔 사망증명서를 발급했다.
최초 사망증명서에선 사고사로 간주했다가 유족 등이 반발하자 미확인 사망으로 사인을 바꾼 바 있다.
현지 언론은 이번 조치가 3일 타이베이 총통부 앞 광장에서 25만 명의 시민이 참가한 가운데 군 가혹행위 사망 진상 규명 야간 집회가 열리고 마잉주(馬英九) 총통이 4일 훙 하사의 장례식에 참가했다가 유족과 군중의 강력한 항의를 받은 직후 나온 것이라고 소개했다.
부검에선 열사병이 직접적인 사망 원인으로 나왔지만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서 가혹행위 등 부적절한 부분이 있었다는 것을 당국이 인정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대만 학계는 군대 내 의문사 진상 규명과 인권개선 등을 요구한 이번 사안이 시민운동의 이정표가 될 수 있다고 주목했다.
랴오다치(廖達琪) 대만 중산대학교 정치학연구소 소장은 “시민이 주도가 돼 인터넷 등을 통해 대규모 집회가 이뤄진 것은 시민사회의 역량이 커지고 있다는 신호”라고 주장했다.
구중화(顧忠華) 국립 대만정치대 교수는 “대만이 성숙한 시민 사회로 한 발짝 다가가고 있다는 증거”라면서 “정치권은 시민의 힘을 간과하지 말고 이번 사건을 개혁을 가속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가세했다.
군 관련 제도개혁도 속도를 내고 있다. 대만 여야는 임시회에서 객관적이지 못하다는 여론의 비난을 받는 군사재판법 개정안을 처리할 계획이다.
개정안은 군사 사건도 평상시에는 민간 검찰과 법원의 조사와 심판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번 훙 하사 의문사 사건도 이 개정안이 통과되면 적용될 예정이다.
아울러 당국은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과거 군 의문사 사건을 전면 재조사할 방침이라고도 밝혔다.
훙 하사는 지난달 3일 오후 군기 교육의 일환으로 팔굽혀펴기 등 신체 훈련을 받은 뒤 의식을 잃고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이튿날 숨졌다. 당시 30도를 웃도는 고온의 날씨였으며 밀폐된 독방에 감금된 상태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 병사는 지난달 말 부대 내 반입이 제한된 휴대전화를 소지하고 있다가 적발됐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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