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 환승 구역서 17년 머문 사례도 있다

공항 환승 구역서 17년 머문 사례도 있다

입력 2013-06-27 00:00
수정 2013-06-27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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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터미널’의 실제 모델 나세리, 드골 공항서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감시프로그램을 폭로하고 도피 중인 전 중앙정보국(CIA) 요원 에드워드 스노든(30)이 러시아 모스크바 셰레메티예보 공항의 환승 구역에 머무는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과거 프랑스 샤를 드골 공항 환승 구역에서 17년을 생활한 이란인의 사례가 새삼 관심을 끌고 있다.

미국을 떠나 홍콩에 은신하다 지난 23일 모스크바로 날아간 스노든은 현재 모스크바 셰레메티예보 공항의 환승 구역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스노든은 미국 정부가 여권을 말소해 버리면서 아무런 신분증도 없어 러시아로 입국하거나 제3국으로 이동할 항공권도 구하지 못한 채 셰레메티예보 공항의 환승 구역에 머무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AP통신 등 외신들은 전하고 있다.

이러한 스노든의 사례는 톰 행크스가 주연으로 출연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터미널’(2004년 제작)의 줄거리를 떠올리게 한다고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7일 보도했다.

이 영화는 프랑스 파리 샤를 드골 공항 환승 구역에서 17년가량을 생활한 이란인 추방자 메르한 카리미 나세리의 실화를 토대로 제작한 작품이다.

위키 백과에 따르면 나세르 씨는 팔레비 왕정에 반대하는 시위에 가담한 혐의로 1977년 추방 당했다.

이후 나세리 씨는 독일, 네덜란드, 벨기에 등을 옮겨 다니며 망명을 요청했다 거절당한 뒤 1986년에 유엔난민최고대표사무소로부터 벨기에로 망명할 허가를 받게 된다.

유럽연합(EU) 소속 국가의 국민은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들 수 있기 때문에 나세리 씨는 사실상 유럽의 어느 나라에도 정착할 수 있는 허가를 받은 셈이었다.

이란인 물리학자 출신의 아버지와 간호사 출신의 스코틀랜드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나세리 씨는 어머니의 고향인 영국에 거주하기로 마음먹고 1988년 8월 영국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는 파리를 거쳐 영국으로 가는 도중 신분증을 비롯한 각종 서류가 포함된 가방을 분실하게 된다.

영국에 도착했지만, 출입국 당국에 여권을 제시할 수 없었던 나세리 씨는 파리로 되돌아오고, 프랑스 당국에 의해 체포됐다가 입국 자체는 합법이며 무국적자이기 때문에 돌아갈 곳이 없다는 이유로 석방된다.

이후 그는 샤를 드골 공항 제 1터미날 환승 구역에 터를 잡고 기나긴 고립 생활을 하게 된다.

망명이 허가된 벨기에로부터 새로운 증명서를 발급받아야 했으나 벨기에를 자발적으로 떠난 난민에 대해서는 재입국을 허가하지 않는다는 벨기에의 관련법 등 때문에 한동안 벨기에로 돌아갈 수 없었다고 한다.

결국 1995년 벨기에 정부로부터 당국의 감시 아래 살면 벨기에로 돌아와도 좋다는 허가를 받았지만 나세리 씨는 원래 의도한 대로 영국으로 가고 싶다면서 벨기에행을 거부했다.

나세리 씨는 2006년 7월 병을 얻어 병원에 입원할 때까지 17년가량을 드골 공항 환승 구역에서 살게 된다.

그는 드골공항에서 독서를 하거나 일기를 쓰고 경제학 공부를 하면서 시간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 ‘터미널’의 제작사인 드림웍스는 나세리의 이야기를 영화화하면서 판권으로 25만 달러를 지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터미널’의 실제 모델인 나세르 씨 이외에도 국제공항 환승 구역에 오랫동안 머문 난민은 적지 않다.

스노든이 머무는 것으로 알려진 셰레메티예보 공항의 환승 구역에서 2006년부터 2007년 사이 열달간 생활한 이란인 여성 자라 카말파 씨도 있다고 WSJ은 전했다.

반정부 활동을 한 혐의로 체포됐다 터키를 통해 외국으로 도피한 카말파 씨는 독일을 거쳐 캐나다로 망명하기 위해 두 자녀와 함께 셰레메티예보 공항의 환승 구역에서 10개월간 머물렀다.

카말파 씨와 두 자녀는 공항 직원들로부터 건네받은 음식으로 버텼다고 당시 언론 매체들은 전했다.

특히 카말파 씨의 10살짜리 아들은 공항에서 생활하면서 러시아어를 배우기도 했다. 카말파 씨는 후원자들이 촬영한 동영상을 통해 “이곳 생활은 매우 힘들다”면서 “우리는 잠잘 곳도 없고, 쉴 곳도 없고, 샤워할 곳도 없다. 아이들은 햇볕조차 보지 못한다”고 공항생활의 고충을 토로했다.

한편 러시아 당국자들은 스노든이 셰레메티예보 공항의 환승 구역에 머물고 있다고 거듭 확인하고 있다. 이곳은 국제법상으로 러시아 영토 밖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26일(현지시간) 스노든이 환승 승객으로 왔기 때문에 환승 구역에 머무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AP 통신은 26일 자사 기자가 키예프를 통해 셰레메티예보 공항에 도착, 환승 구역에서 스노든의 행방을 추적했지만, 그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면서 “스노든의 미스터리가 심화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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