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촨강진 최대 피해지 루산현을 가다

쓰촨강진 최대 피해지 루산현을 가다

입력 2013-04-22 00:00
수정 2013-04-22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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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세 수려한 고장이 참혹한 재해 현장으로 돌변 주민들, 재연된 강진에 몸서리치며 고달픈 임시천막 생활

대규모 지진에 강타당한 중국 쓰촨(四川)성 야안(雅安)시 루산(蘆山)현은 마치 태풍과 폭격을 동시에 맞은 모습이었다.

쓰촨의 성도인 청두(成都)에서 야안시를 거쳐 21일 낮 어렵사리 찾은 연합뉴스 특파원에게 모습을 드러낸 루산현은 산세가 수려해 더욱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평소 정체가 되지 않을 때는 2시간 안팎이 걸리는 청두~야안 구간을 무려 4시간이나 달렸다. 그래도 야안에 곧바로 진입하지 못하고 입구 격인 밍산(明山)현에서 발이 묶일 뻔 했다.

재난 당국이 구조나 구급 업무 차량만 통과시키며 도로를 통제했기 때문이다. 영업용 택시도 통행이 허락되지 않았다.

다만 오토바이는 자유롭게 통행이 가능했다. 오토바이 뒷좌석에 올라 1시간 반가량 강풍을 가른 뒤에야 피해 현장을 접할 수 있었다.

야안시에서 루산현으로 가는 도로 일부 구간에서는 가파른 산에서 흘러내린 바윗덩어리도 널브러져 있었다.

루산현 진입로를 달릴 때는 대협곡 옆으로 뚫린 진입로 양쪽에 메타세쿼이아가 여린 새순이 뿜어내는 연둣빛 표정으로 마치 방문객을 반기기라도 하듯 흔들거렸다.

길옆 밭에는 온통 유채가 심어져 있었다. 보름 전쯤에는 노란빛으로 온 동네를 물들이며 봄 분위기를 최고로 끌어올렸으리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진입로에 각종 중장비 차량과 ‘긴급 구조’ 띠를 두른 차량, 물자를 가득 실은 차량이 줄을 지어 지나면서 긴장감을 주기 시작했다.

차량 대다수가 군 차량인데다 간간이 대학생으로 보이는 젊은이들이 깃발을 들고 10~20명씩 행진하는 모습도 마치 전시를 방불케 했다.

긴장감이 커져 갈 때 눈앞에 펼쳐진 루산현 현정부 소재지는 언뜻 보기에 한국의 여느 시골 읍내와 흡사했으나 부서진 건물들이 보이자 이내 싸늘한 느낌이 들었다.

중심지 도로 가에는 간판들이 태풍을 맞은 듯 길가에 나뒹굴고 고풍스러운 건물 지붕에 올려졌던 기왓장들은 대책없이 우수수 흘러내렸다.

며칠 전 만에도 저마다 생계를 위해 나선 시골 사람들이 가득했을 상가거리는 모두 문을 닫을 것도 없이 철시를 한 상태였다.

일부 슈퍼마켓에서는 물건을 채 빼내지 못해 음료수가 그대로 쌓여 있으나 주인은 보이지 않았다.

도로에는 깨진 벽돌이나 기왓장들이 그대로 널려 있는가 하면 주인 잃은 오토바이가 나뒹굴기도 했다.

아파트 건물들에는 여기저기 깃봉에 빨래들이 휘날리면서 황급히 몸만 빠져나갔을 주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주민들은 2008년 규모 8.0 원촨(汶川) 대지진으로 8만6천여 명이 희생된 악몽이 사라지기도 전에 다시 엄습한 강진에 몸서리를 쳤다.

중심가에 자리한 루산초등학교에 이르렀을 때는 지진보다 전쟁의 폭격을 떠올리게 했다. 정문 앞에 10여 간으로 길게 지어진 단층 짜리 체육관 건물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부서져 있었다.

학교 건물 곳곳에도 굵은 생채기와 함께 금이 가 있거나 유리창들이 깨지고 벽돌이 깨지면서 뒤엉킨 파편이 바닥에 그대로 쌓여 있기도 했다.

이 학교 교사 류민(劉敏)씨는 “2008년 원촨 대지진에 이어 이 지역에서 큰 지진이 다시 발생해 걱정이 크다”면서 “이번 지진으로 학교 건물이 심하게 파손되고 금이 가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다행히 토요일이어서 수업이 없었기 때문에 학생들은 다치지 않았지만 일부 선생님들은 부상하기도 했다”며 “루산현에서도 낡은 건물이 많은 곳은 피해가 심각하다”고 룽먼(龍門) 지역을 걱정하기도 했다.

나들이를 준비할 토요일 아침에 황급히 집을 빠져나와야 했던 광푸웬(廣福園) 아파트 주민들은 아파트 앞 공터에 임시 천막을 치고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어머니를 모시고 4명이 함께 산다는 주민 저우(周) 모(38·여)씨는 “식구들이 다행히 재빨리 몸을 피해 별다른 피해는 없지만 집이 부서졌다”면서 “지진 발생 당시 놀란 생각을 하면 아직도 가슴이 떨린다”고 말했다.

그는 “밖에서 자고 먹고 하는데 먹는 것은 어느 정도 지원이 되고 있으나 임시 천막이 모자라 하늘을 이고 자야 할 판”이라면서 “부족한 물자 지원이 원활하게 이뤄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동네 곳곳에서는 이재민들이 길게 줄을 서서 정부와 지원기관이 제공하는 컵라면, 음료수, 빵과 같은 긴급 구호 물품을 받기 위해 초조하게 기다리기도 했다.

쪼개진 나무나 콘크리트 파편 등이 널려 있어 아슬아슬하게 보이는 주상복합 건물 곳곳에서는 이재민들이 미처 가지고 나오지 못한 이불 등을 빼내오느라 위험을 감수하며 드나드는 모습도 보였다.

건물이 완전히 부서지지 않고 반파된 경우에는 앞에다 천막을 쳐놓고 일가족이 복구를 하거나 휴식을 취하는 장면도 자주 눈에 띄었다.

어른들은 저마다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어린이들은 임시 천막 안에서 서로 장난을 치면서 천진난만함을 그대로 보여주기도 했다.

날은 저물어도 도로를 가득 메운 군부대 차량, 응급구조대, 자원봉사대 행렬은 공포에 휩싸인 루산 주민들에게 ‘희망의 등불’로 남아 있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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