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자민당 새 총재 아베 신조는 누구인가

日 자민당 새 총재 아베 신조는 누구인가

입력 2012-09-26 00:00
수정 2012-09-26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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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대표적인 극우 정치인 아베 신조(安倍晋三.58)가 자민당 총재에 뽑힌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내각에서 관방 부장관, 자민당 간사장 등 출세 코스를 밟은 그는 2006년 9월20일 고이즈미 총재의 임기 만료로 치러진 경선에서 아소 다로(麻生太郞), 다니가키 사다카즈(谷垣禎一)를 큰 표차로 꺾고 21대 자민당 총재로 선출됐다.

관방 부장관 시절인 2002년 북일 정상회담 전후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 문제에서 강경한 태도를 취한 것이 인기를 끈 요인이었다.

2006년 9월26일에는 제90대 일본 총리에 취임했다. 제2차 세계대전 패전 후 최연소 총리일 뿐만 아니라 1945년 이후에 태어난 첫 총리라는 점에서 기대를 모았다.

총리 취임 직후 고이즈미 전 총리의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로 냉각된 외교 관계를 복원하겠다며 중국과 한국을 잇달아 방문해 후진타오(胡錦濤) 주석, 노무현 대통령과 회담했다.

하지만 아베가 당시 ‘아름다운 국가’라는 국정 슬로건을 내걸고 추진한 것은 과거사 부정과 개헌 준비, 애국 교육을 내건 교육기본법 개정, 방위청의 방위성 승격, 대북 제재였다. 일본군 위안부를 강제 연행한 사실이 없고 재일동포에게 참정권을 부여할 수 없다는 것은 그의 신조였다.

’오른쪽으로 치우쳐도 너무 치우쳤다’는 평가를 받은 아베 내각은 2007년 3월 위안부 강제 연행을 공개적으로 부인하면서 국제사회의 비난을 자초하고 각료들의 추문까지 잇따르면서 몰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2007년 7월29일 참의원 선거에서 야당에 참패한데다 같은날 미국 하원이 일본군 위안부 비난 결의를 하는 등 궁지에 몰리자 아베는 식욕 감퇴와 설사 등 건강 악화를 호소하다 9월12일 사의를 표명했다.

총리직에서 물러난 날은 공교롭게도 꼭 1년 전인 2007년 9월26일이었다.

이후 당내외에서 “무책임하다”는 비판을 받으며 숨죽이고 있던 아베는 올해 들어 하시모토 도루(橋下徹) 오사카 시장이 이끄는 신흥 정치세력과의 연대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총재직 재도전에 나섰다.

그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는 “(총리가 되면) 고노 담화 뿐만 아니라 무라야마 담화도 모두 수정하겠다”거나 “총리로 있을 때 하지 못한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하겠다”고 밝혀 주변국과 역사 마찰을 예고했다. 5년 전 사임 이유로 거론한 건강 상태에 대해서는 “신약 덕분에 완치했다”고 주장했다.

아베는 정치 명망가의 일원이다. 백부인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와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岸信介)가 각각 총리를 지냈다. 부친 아베 신타로(安倍晋太郞)는 외무상을 역임했다.

자민당 총재 유력 후보였던 부친이 숨진 뒤 1993년 부친의 선거구(야마구치 1구)를 이어받아 첫 선거에서 당선된 뒤 6선 경력을 쌓았다.

어릴 때는 야구, 대학에서는 양궁을 좋아해 2005년부터 일본양궁연맹 회장을 겸임하고 있다. 모리나가제과 사장의 딸인 아내 아베 아키에(昭惠)는 한류 스타 고(故) 박용하의 열렬한 팬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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