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랑의 중동] 초강경 시위 진압 카다피는

[격랑의 중동] 초강경 시위 진압 카다피는

입력 2011-02-21 00:00
수정 2011-02-21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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反서방 혁명영웅 ‘42년 철권’ 원흉으로

초강경 시위 진압으로 세계를 경악시키고 있는 리비아의 국가원수 무아마르 알 카다피(69)는 현존하는 세계 최장기 독재자로 꼽힌다. 42년째 집권을 이어오고 있는 그 역시 한때는 젊은 혁명 영웅이었다. 부패한 왕과 낡은 전제군주제를 몰아내고 국가의 면모를 일신했던 인물이었다.

1942년 유목민의 아들로 태어난 카다피는 1963년 대학을 졸업한 뒤 군사학교에 들어가 직업군인이 됐다. 당시 이집트 대통령이었던 나세르를 모방해 젊은 장교들로 구성된 ‘자유장교단’을 구성한 카다피는 1969년 쿠데타를 일으켰다.

일개 대위에서 일약 혁명평의회 의장으로 취임해 권력을 장악한 카다피는 국부 유출의 원흉으로 규탄의 대상이던 외국 석유회사들을 추방하고 석유자원을 국유화했다. 미군기지를 철수시키고 비동맹운동에 참가하는 등 독자외교노선을 견지했다. 과거 리비아를 식민지배했던 이탈리아인들을 추방하고 그들의 재산을 몰수하는 등 식민잔재도 철폐했다.

하지만 카다피는 단일 이슬람 국가 건설을 시도하고 엄격한 금욕주의 정책을 시행하는 등 점차 무리수를 두기 시작했다. 괴팍하고 종잡을 수 없는 행동으로 외교무대에서 숱한 물의를 일으키는 행동도 서슴지 않았다. 중동사 전문가 고 앨버트 후라니는 저서 ‘아랍인의 역사’에서 정권을 잡을 당시의 카다피에 대해서는 ‘장교 출신의 탁월한 인물’로 표현한 반면 권력을 장악한 뒤의 그는 ‘예측할 수 없는 인물’로 묘사했다.

카다피는 미군기지를 철수시키는 등 반미노선을 견지했고 그 대가로 리비아는 오랫동안 미국과 군사적 긴장관계를 유지하며 대외적으로 고립을 감수해야 했다. 미국은 1979년 시위대가 리비아 주재 미국 대사관을 방화하는 사건이 일어나자 1980년 외교관계를 끊었고 이후 리비아를 테러지원국 명단에 올렸다.

미국을 겨냥한 테러사건의 배후라는 이유로 1981년과 1986년 두 차례 리비아를 폭격하기도 했다.

하지만 리비아와 미국은 2003년 12월 핵무기 프로그램 폐기에 전격 합의했고 이후 관계개선을 거쳐 2006년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하며 외교관계를 전면 정상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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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2011-02-21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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