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순주 건국대 건축학부 교수
최근 아파트 재건축 열기가 다시 불붙고 있다. 정부가 4·1 부동산 대책으로 수직 증축 리모델링을 허용하고 얼마 안 돼 다시 9·1 부동산 대책으로 재건축 규제가 완화됐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15년 이상 된 아파트 주민들이 기로에 서게 됐다. 노후화 등의 주거환경 개선을 위해 리모델링 추진 조합을 결성했다가 최근에는 재건축 규제 완화로 두 갈림길에서 고민하게 됐다.
수직 증축은 안전성에 문제가 없는 조건으로 층을 2~3개층 높일 수 있고 가구 수가 현재보다 10~15% 증가한다. 조합원 부담이 줄고 사업성을 기대할 수 있기에 그동안 강남과 분당을 중심으로 1기 신도시 아파트들이 리모델링 대상으로 주목을 받아 왔다. 그런데 정부는 9·1 대책을 발표하면서 리모델링이 아닌 기존 아파트를 모두 허물고 다시 신축을 하는 재건축의 길까지 쉽게 열어 주었다. 재건축 추진 연한도 기존 40년에서 30년으로 단축하고, 안전진단 기준도 완화했다. 지금까지는 안전진단에서 구조 안전성 항목이 40점을 차지해 지반 침하나 내구성 약화 등 구조적 문제가 있지 않는 한 재건축 판정을 받기 어려웠지만, 이제는 주차문제나 일조환경 등 주거환경 평가가 기존 15점에서 40점으로 높아지고 배관 노후화와 층간소음도 포함시켜 재건축이 쉬워졌다. 아파트 안전에 큰 문제가 없어도 생활 불편만으로 재건축이 가능해진 셈이다.
재건축 완화라는 발 빠른 부동산 대책이 주택시장의 안정화를 꾀하려는 정부의 정책임을 누구나 다 안다. 아파트로 재산을 형성하던 사회적 욕망도 아직 거기에 놓여 있는 듯하다. 그러나 아파트의 모순을 해결하려는 근본적 대책이 될 수 없고, 주택시장 활성화를 위한 해결책으로서도 지속성을 발휘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더욱이 재건축을 기다리기 위해 아파트 관리를 소홀히 할까 우려스럽다. 우리의 미래를 향한 국토부의 주거환경 정책 비전은 과연 무엇일까 생각하게 된다. 경제 논리와 이익 추구에 지배되는 재건축 규제를 조였다 풀었다 할 게 아니라, 바람직한 주거환경을 어떻게 만들어가는 게 좋을지 고민해야 하는데 말이다.
아파트 수명이 선진국의 30%밖에 안 되는 평균 27년 정도에 그치는 현실 속에서, 탄산가스 배출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시멘트로 더 높은 고층화가 진행될 것이니 정부의 무책임이 느껴진다. 그보다는 총체적인 환경과 주거관리 의식을 제고해 보다 행복한 주거환경을 구상하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경제논리에도 기여할 것이다. 경기부양 효과가 장기적이지도 않고 전국적이지도 않은 메뉴보다는 근원적인 주거환경 개선 정책을 모색해야 한다. 그래야 주택시장의 안정성도 확보하고, 장기적으로 경제논리에도 부합한다. 국민의 주거환경에 대한 만족도와 행복도 증진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주택 스톡(stock)은 개인의 자산이자 사회적 자산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현실은 경제적 이윤을 우선으로 하는 내구소비재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재건축 비율이 증가하면 자원 낭비라는 경제 문제뿐 아니라 환경까지도 수십년 몸살을 앓게 된다. 주거문화가 단절되고 흔들리며, 함께 자라온 나무와 꽃들까지 희생된다. 리모델링은 기존의 커뮤니티를 유지하며 노후화를 지연시키고 주거환경을 개선할 수 있어 궁극적으로 주택의 수명 연장과 환경 보존의 성격이 있었는데, 재건축 완화 발표로 흔들리고 있다.
결정은 아파트 주민들의 몫이다. 기존의 자연환경과 커뮤니티를 모두 포기하고 경제성 위주의 재건축을 선택할 것인지, 아니면 건물의 생애주기를 고려한 체계적 관리시스템을 구축하며 에너지와 탄소 절감형 친환경 리모델링으로 지속성을 선택할 것인지 아파트 특성에 따라 이제 주민들이 선택해야 한다.
2014-09-27 2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