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코레일의 진정한 문제/한순구 연세대 경제학 교수

[열린세상] 코레일의 진정한 문제/한순구 연세대 경제학 교수

입력 2013-12-31 00:00
수정 2013-12-31 0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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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구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한순구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최근 한국 사회는 코레일 노조의 파업으로 연말 같지 않은 연말을 보냈다. 텔레비전 뉴스프로그램이나 신문은 연일 코레일 노조 파업을 둘러싼 여러 문제에 대해 보도하느라 다른 소식들은 별로 다루지도 못했다. 이런 방송이나 신문을 보노라면 우리 한국 사회가 코레일 사태로 큰 혼란과 피해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나 혼자 가만히 앉아서 생각해 보면 놀랍게도 코레일 사태로 내가 입은 피해는 거의 없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사실 나는 주로 자동차를 이용하여 출퇴근하며, 지방에 가끔 내려갈 일이 생기면 먼 거리는 대부분 비행기를 타고 가까운 거리는 내 차로 운전한다. 지난 10년간 내가 이용한 코레일이라고는 KTX를 왕복 네 번 정도 이용한 것이 전부이다.

한마디로 개인적으로 코레일은 나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존재인 것이다. 만일 내일부터 한국의 모든 철도가 정지된다고 하더라도 나는 남은 인생을 별다른 불편 없이 살아갈 수 있음이 분명하다. 서울 지하철 1호선이나 국철 및 철도이용자, 화물관계자 등과 달리 아마 나와 같은 경우도 많을 것이다. 오늘 서울~부산 간 KTX요금을 확인해 보니 5만 7300원 정도이고 소요 시간은 2시간 40분이 조금 넘었다. 반면 저가 항공사 한 곳의 가격은 7만 5000원이었고 소요 시간은 55분이었다. 코레일에서 가장 편리하고 흑자를 내는 인기 상품인 KTX조차도 시간이 중요시되는 현대의 기준에서 보면, 공항이 외곽지역에 위치한 점을 감안하더라도 항공기와의 경쟁력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한편 출발하는 건물에서 도착하는 건물까지의 이동성이 중요한 여행객이라면 대부분의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자가용으로 이동하는 것이 철도보다 편하기 때문에 현재 대한민국의 철도는 저렴해진 항공기 요금과 편리한 자가용 운전 사이에서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즉, 현대 한국 사회에서 철도는 일반 서민들을 위한 교통수단으로써의 지위를 상실해 가고 있다. 이처럼 철도와는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고 있는 나에게 이번 코레일의 파업 사태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사실 내게 코레일 사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동시에 아주 심각한 의미가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코레일 사태는 내가 모르고 있었던 심각성을 깨닫게 해 준 계기가 되었다.

이번 코레일 사태가 발생하기 전까지는 공기업인 코레일의 부채가 17조원을 넘는다는 사실과 매년 5000억원의 부채가 추가로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이다. 17조원의 부채는 우리 국민을 5000만명으로 보았을 때 1인당 34만원의 부채를 의미한다. 3인 가족인 나의 경우 100만원이 넘는 액수이다. 코레일의 부채가 이렇게 쌓이게 되기까지는 내가 전혀 모르는 복잡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17조원이라는 어마어마한 부채가 쌓이기까지는 노동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경영진의 방만함도 분명히 있었을 것이고 코레일 경영진이 말하는 것처럼 노동자들의 집단 이기주의적인 행동도 있었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나와 같은 대한민국의 한 납세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런 잘잘못을 가려서 과연 코레일이 경쟁 시스템으로 가는지, 아니면 민영화를 하는지 판단을 내리기 이전에 보다 중요한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우리 국민들이 과연 코레일 또는 철도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가. 대다수의 국민들이 자주 사용하지도 않는 철도. 운행이 중지되더라도 버스나, 자동차, 비행기 등으로 바로 바꾸어 탈 수 있어서 별로 불편하지 않는 철도. 국민 1인당 34만원의 빚을 지게 한 철도. 바로 여기에 코레일의 문제가 있는 것이다. 코레일 관련 당사자들은 오늘도 치열하게 대립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이렇게 대립하는 당사자들이 국민들이 어떤 눈으로 코레일을 보고 있는지 전혀 생각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이러한 철도 파업 사태가 일어났지만 많은 국민들은 사실 그렇게 큰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는 사실이 코레일이 가장 걱정해야 할 진정한 문제일 것이다. 만일 코레일의 관계자들이 이런 큰 문제에 대해 자각한다면 지금이 서로 대립하고 다툴 시기가 아니고, 오히려 똘똘 뭉쳐서 항공기, 버스, 자동차로 빠져 나가고 있는 철도 승객과 화물을 되찾아 와야 하는 시기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2013-12-31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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