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순구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그런데 대한민국의 부모들은 상당히 큰 빚을 자녀들에게 물려줄 수밖에 없다. 2013년 현재 국민 1인당 정부의 빚이 900만원에 육박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 가족의 세 식구로 보면 2700만원의 정부 빚을 떠안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 빚은 우리 부부와 아들 세 명이 갚을 액수가 아니라 미래에 아들 혼자서 갚아야 할 액수라고 보는 것이 맞다. 매년 정부의 빚은 늘면 늘었지 줄어들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국민 1인당 정부의 빚은 점점 늘어만 갈 것이고, 내가 퇴직하기 전에 대한민국 정부가 이 빚을 늘렸으면 늘렸지 줄이지는 못할 것이다. 그런 만큼 결국 우리 아들, 아니면 아직 태어나지 않은 손자가 2700만원이 훨씬 넘는 액수를 갚아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한 푼이라도 더 남겨 주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정부의 부채가 쌓이면서 자식들에게 돈을 남겨주기는커녕 엄청난 빚만 물려주는 상황으로 급하게 내달리고 있다. 물론 미국, 유럽, 일본에 비해서는 아직 대한민국의 부채는 상대적으로 적을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은 자국 화폐인 달러가 세계에서 통화로 사용되고 있는 국가이다. 유럽은 이미 빚이 누적되어 발생한 재정 위기로 경제가 휘청거리고 있다. 막강한 생산력을 바탕으로 잘 버티던 일본 또한 이제 버티기 어려운 시점에 가까워지자 정치인들이 극우적인 행동을 통하여 이를 잠재우고자 하는 행동을 보이고 있다.
그나마 대한민국의 부모들이 자녀를 많이 낳으면서 빚을 진다면 미래 우리 후손들의 1인당 빚 부담이 조금 줄어들 수도 있겠지만, 달랑 아이 하나인 우리 집이 대한민국의 평균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수가 줄어드는 미래의 젊은 세대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빚을 물려주게 될 가능성이 아주 크다. 사실 대한민국의 빚은 우리 후손들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 부모들의 문제이기도 하다. 정부의 빚은 40대의 가장인 내가 죽은 후에 문제가 될 가능성보다는 30년 정도 후까지 내가 살아 있다면 이미 큰 문제가 되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의회가 정부의 예산안을 놓고 의견 충돌을 벌여 한동안 미국 정부가 마비되었던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미국 의회는 미국 정부의 채무가 급격히 늘어나는 것은 막기 위해서 이런 행동을 취한 것이지만, 만일 우리 정부가 수십 년 후에 빚 갚을 능력이 없어지면 학교, 병원, 버스나 지하철 같은 교통수단 등 정부가 운영하는 사회의 기본적인 시설들이 가동 중단될 수도 있는 것이다.
자녀와 후손들에게 무거운 짐을 물려주는 것도 문제이지만, 현재 중장년층의 국민에게 급증하는 정부의 빚은 아주 우울한 노후 생활을 의미하는 것일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정부의 빚은 경기가 다소 좋아진다고 해도 갚기 어려운 것인데, 그 이유는 우리 인구의 노령층이 늘어나서 연금 지불과 의료보험 지출이 늘어나는 반면 젊은 인구가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의 정치인들은 늘어나는 국가의 빚을 줄이려는 논의를 하기보다는 실행 불가능한 선심성 공약을 남발하고 이런 국가를 위협하는 공약을 누가 더 지켰는가를 갖고 다투고 있으니 걱정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많은 국민도 정부의 빚은 마치 자기와는 상관없는 것처럼 생각하여 정부의 돈을 쓰려고만 하니 큰 문제이다.
수입에 맞추어 규모 있게 살림을 하지 못하고 빚 잔치를 하는 가정은 곧 파탄에 이르게 된다. 정부 도움이 필요한 곳이 한두 곳이 아닐 것이고, 이런 도움이 간절하게 필요하지 않은 사람이 또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아무리 필요하다고 해도 갚을 길 없는 빚을 내어 쓴다는 것 만큼은 절대로 삼가야 할 일이다.
2013-10-22 3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