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정년연장제는 약도 되고 독도 된다/허만형 중앙대 행정학과 교수

[열린세상] 정년연장제는 약도 되고 독도 된다/허만형 중앙대 행정학과 교수

입력 2013-05-20 00:00
수정 2013-05-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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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만형 중앙대 행정학과 교수
허만형 중앙대 행정학과 교수
정책은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약제이지만 잘못 활용하면 독이 되어 더 심각한 문제를 낳을 수도 있다. 약으로 썼다가 독이 되어 돌아온 정책 중 하나가 인턴제이다. 청년실업 문제 해결을 위해 도입했으나 기업의 인건비 절감 수단으로 활용됨으로써 비정규직 양산이라는 새로운 문제를 낳은 정책이다. 불행히도 정년 60세 제도는 독이 될 불씨가 있어 시행 전에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다행인 것은 2016년 시행 전까지 2년 반 정도의 준비시간이 있다는 점이다.

정년 60세 제도는 2016년에는 공공기관, 지방공사, 지방공단, 상시 300인 이상 사업장에 적용되고 2017년부터는 국가 및 지자체, 상시 300인 미만 사업장에 적용된 뒤 모든 사업장으로 확대된다. 일할 수 있는 기간을 연장함으로써 노인 빈곤 문제해결을 위한 정책수단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취업포털 ‘사람인’의 여론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77.6%가 정년 60세 연장 규정에 긍정적 답변을 해 현재까지는 정책순응도도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사실 세계 각국은 1980년대부터 정년 연장 제도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는 60세를 정년으로 정했지만, 현재 67세를 정년으로 채택하고 있는 나라만 해도 미국·노르웨이·아이슬란드·그리스·폴란드 등 5개국이다. 일본·영국·오스트리아·스페인 등은 65세를 정년으로 규정하고 있다. 중국도 2011년에 남성 근로자의 정년 연령을 60세로 연장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여기에 비하면 2016년부터 도입하기로 한 우리나라의 60세 정년은 결코 발빠른 정책 행보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준비가 미흡했다. 정년 연장에 따른 기업의 임금체계 개편 문제를 노사 간 협의사항으로 남겨둔 것은 약이 아니라 독이 될 가능성이 있다. 기업은 정년 연장과 임금 조정의 연계를 적극적으로 시도하고, 근로자는 여기에 저항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노사 간 의견이 일치하지 않아 분쟁이 발생하면 노동위원회의 조정을 받을 수 있도록 했지만 노사 분규의 불씨가 될 소지를 안고 있다. 정년연장제 도입의 반대급부로 고용지원금 제도를 활용하면 독이 될 요소를 제거할 수 있었는데도 하지 않은 것은 아쉽기만 하다.

근로자 300인 미만 기업은 2018년 이후에나 적용된다는 것 또한 아쉬운 점이다. 그래서 정년 연장은 대기업과 공공부문 근로자에게만 혜택이 돌아간다는 비판이 나온다. 사실 2005년 퇴직연금을 도입할 당시에도 대기업부터 우선 적용하는 방식을 채택함으로써 퇴직연금 사각지대를 양산하고 말았다. 현재 상시근로자 500인 이상 기업은 96.4%가 퇴직연금을 도입했지만 10인 미만의 기업은 9.7%, 10~29인 사이의 기업은 30.4%, 30~99인 사이의 기업은 39.2%만이 도입했다. 중소기업 근로자는 퇴직연금도 없고, 정년 연장도 보장받지 못하는 이중고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다. 2016년 이전에 제도를 보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정년 연장은 자칫 청년실업 해소에 장애가 될 가능성도 있다. 우리의 청년실업 문제는 심각하다. 올 1분기 경제활동인구의 실업률은 3.2%인 데 반해 같은 기간 청년 실업률은 8.4%였다. 2000년도부터 추세를 보면 경제활동인구의 실업률은 4.4%에서 3.2%로 줄어들었지만, 청년실업률은 8.1%에서 8.4%로 늘었다. 청년실업 해소를 위해 다양한 정책이 개발되었지만 그 효과가 미미하다는 증거이다. 최근 청년 3% 고용 의무화를 골자로 하는 청년고용촉진 제도를 도입했지만, 정년 연장의 파고에 또다시 이 제도가 퇴색될 가능성도 있다.

정년 60세 제도의 성공을 위해서는 이윤 추구를 맹신하는 기업의 탐욕에 대처해야 하고,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균형뿐만 아니라 세대 간 균형도 고려해야 한다. 정년 연장이 기업의 과다한 구조조정이나 임금 피크제 확산으로 이어지면 노인 빈곤 문제 해결을 위해 만든 법이 노인 빈곤을 양산할 수도 있다. 대기업 근로자만 정년 연장이 가능하고 중소기업 근로자는 배제되는 일그러진 모습으로는 정책 성공을 기대하기 어렵다. 정년연장제는 노인 빈곤 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 수단이라는 초심 유지가 정책 성공의 지름길이다.

2013-05-2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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