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K팝이 준 반성과 희망/이광형 KAIST 바이오 및 뇌공학과 미래산업 석좌교수

[열린세상] K팝이 준 반성과 희망/이광형 KAIST 바이오 및 뇌공학과 미래산업 석좌교수

입력 2011-06-24 00:00
수정 2011-06-24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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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형 KAIST 바이오 및 뇌공학과 미래산업 석좌교수
이광형 KAIST 바이오 및 뇌공학과 미래산업 석좌교수
10년 전쯤 되었을 것이다. 일본 친구들을 만나면 자꾸 ‘윈터 소나타’를 말했다. 그러면서 나는 알지도 못하는 ‘용사마’를 거론하며 자꾸 말을 이어갔다. 결국 내가 잘 모른다고 말하니 정색을 하면 “당신 한국인 맞느냐?”고 물었다. 나는 이런 핀잔을 들은 후에 ‘겨울연가’ 재방송을 빠뜨리지 않고 봤다.

세계 문화의 일번지 프랑스 파리에서 한국의 K팝이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고 한다. 이제 유럽 친구들을 만나면 슈퍼주니어, 샤이니를 말할 것이다. 나는 아이돌 그룹의 이름을 외우기 시작했다. 다시는 외국인으로부터 핀잔을 듣지 않기 위해서다. 특히 이번에는 아시아의 한류와 차이가 있다. 문화적 우월감에 젖어 있는 서양인들을 대상으로 한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사실 지금까지 대중음악 공연장에 표를 사서 가본 적이 없다. 무엇보다 빠른 음악은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는다. 특히 공연장에서 뛰면서 소리를 지르는 모습을 품위 없는 행동으로 치부하기도 했다. TV에 그런 모습이 나오면 돌려 버렸다. 요즘 유행하는 가수가 누구인지, 어떤 노래가 새로 유행하는지도 모르고 살았다.

그러나 많은 젊은이들은 최신 대중음악을 듣고 열광하고 있다. 공연이 있으면 줄을 서서 표를 사고, 공연장에서는 두 시간 내내 발을 동동 구른다. 그런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겠다. 나는 그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이 좋아하는 것, 생각하는 것을 모른다. 아마 그들도 내가 생각하는 것을 모르고 살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그들의 생활에 전혀 지장을 주지 않을 것이다.

이런 현상은 나에게 국한된 일이 아니다. 내가 만나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분명 내가 모르는 세계, 나와 분리된 세상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오늘을 사는 많은 대중과 소통을 하지 않고 있는 셈이다.

나는 집에서 TV 드라마를 보지 않아 드라마 산업에 기여하지 않았다. 음반을 사거나 대중음악 공연장에 가지 않았기 때문에 K팝을 키우는 데 도움을 주지 못했다. 그런데도 그들은 유사 이래 처음으로 한민족을 문화적 열등감에서 해방될 수 있게 해주고 있다. 그들이 역사를 바꾸고 있다.

이제 음반과 드라마, 영화의 수출이 잘될 것이다. 이런 현상이 계속되면 소프트웨어 제품도 잘 팔릴 것이라는 기대가 생긴다. 반도체, 휴대전화, 자동차, 선박 등 하드웨어 제품은 비교적 단순하다. 그러나 문화적인 요소가 섞인 소프트웨어 제품은 문화의 장벽을 넘어야 한다. 예를 들어서 우리나라 대표 인터넷 포털인 네이버나 다음이 외국에서 어려움을 겪는 이유가 바로 문화적인 차이 때문이다. 외국인 눈에는 우리의 검색 시스템이 세련되어 보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즉, 우리가 좋아하는 것과 외국인이 좋아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서양인들의 경우 그들의 문화는 세계적이다. 그들이 좋다고 생각하며 만든 것은 세계 사람들이 좋아한다. 스티브 잡스가 만든 스마트폰이 대표적인 예다. 우리나라 기업이 그것을 만들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스마트폰 속에 담긴 디자인과 문화적 코드가 차이 나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 것을 서양인들도 좋아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고 있다. 한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유럽의 젊은이들도 마찬가지로 열광하고 있다. 그만큼 우리가 세계화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좋다고 만든 것을 세계 사람들도 좋아하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희망과 함께 ‘반성’의 느낌을 가지고 있다. 이제는 아이돌 공연장에 가서 함께 즐기도록 노력해야겠다. 존경의 마음을 가지고 TV의 아이돌 프로그램을 봐야겠다. 그동안 단절되었던 젊은이들과 소통의 채널을 만들어야겠다. 결국 세상은 그들이 생각하는 대로, 원하는 대로 굴러가게 되어 있다.

그리고 어서 프랑스에 가 보고 싶다. 나는 30년 전 프랑스 유학 시절 동양의 이름 모를 나라에서 온 유학생을 바라보던 그 눈길을 기억한다. 그 눈길이 어떻게 변했나 확인하고 싶다. 고맙다. 소녀시대, 동방신기 ! 그리고 이수만 사장님!
2011-06-24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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