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못다 이룬 꿈 하늘에서 펼치시라/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 교수

[열린세상]못다 이룬 꿈 하늘에서 펼치시라/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 교수

입력 2009-05-26 00:00
수정 2009-05-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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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배고픈 꿈을 가꾸던 김해 봉하마을의 봉화산 부엉이 바위 위에 다시 선다. 인생의 고비마다 마음을 다지러 올랐던 곳 아닌가. 동이 터 오르는 하늘을 쳐다본다. 2002년 대통령으로 당선된 기쁨이 한 번 더 느껴진다. 아쉽다. 국가와 민족, 그리고 통일을 위하여 보다 더 많은 업적을 낼 수 있었는데. 모두 미안하다. 내 주장보다 다른 이들의 말에 좀 더 귀를 기울이지 못했다. 특히 김대중 전 대통령이 퇴임 뒤 대북송금 특검으로 이처럼 힘들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 무엇보다 퇴임 뒤 내 생명과 같은 가족과 친구, 그리고 나의 도덕성과 자존심을 지키지 못했다. 삶과 죽음이 자연의 일부이므로 나는 이렇게 먼 길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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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 교수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 교수
오욕으로 점철된 한국의 대통령사를 돌이켜보면 더 이상 반복되지 말아야 할 일이 또 벌어졌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망명지에서 세상을 떠났고, 윤보선 전 대통령은 5·16쿠데타로 자리를 내주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아끼던 심복의 흉탄에 운명했고, 전두환 전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은 퇴임 뒤 감옥에 들어갔다. 이제까지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은 큰 탈이 없었지만 대신 아들들이 감옥을 들락거렸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이렇게 돌을 던질 수 있었나 싶다. 과연 돌을 던질 만한 사람이 돌을 던졌느냐는 말이다. 퇴임 전에 결코 ‘집’에서라도 600만달러를 받지 말았어야 했다. 이론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과 폭탄주를 즐기고 전별금도 두둑하게 챙겼으며 골프를 함께 친 인사를 내부에 두고 있었던 검찰이 이렇게까지 전임 대통령을 압박했어야 했을까.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에 대한 검찰의 수사는 아직도 머뭇거리고 있는데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혐의 사실은 친절하게 있는 거 없는 거 다 공표해 버렸다. 그리고 일부 언론들은 앞을 다투어 사실을 부풀리고 온갖 추측으로 전임 대통령이자 한 인간에게 갖은 수치와 모멸을 안겨주었다.

정치란 사회의 제한적인 자원을 권위적인 방식으로 분배하는 것이라고 한다. 쉽게 말해 권력을 가진 사람이 사회의 자원을 나눠주는 방식을 정하고 이에 따르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정치는 대화와 타협을 필요로 하지만 때로는 복종이나 굴복까지 요구한다. 전자를 택하는 정치가 민주적이라면 후자는 힘에 기초하는 후진적 정치이다. 한국의 정치는 아직 후자 쪽에 가까워 전임 대통령에 대한 예우에 인색하다.

게다가 ‘민주주의 2.0’이니 뭐니 하면서 정치와 직간접적으로 발을 담가두려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매우 부담스러운 존재였을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직 인수 때부터 전임 대통령을 최선으로 예우하겠다고 하고 이 난리를 치르고 세상을 떠나보낸 뒤 다시 예우를 다하겠다고 말만 하면 무슨 소용인가.

한국 정치가 예측불가능하기 때문에 미래를 내다보기 쉽지 않지만 앞으로도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는 당분간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그랬듯이 전통이란 하루아침에 쉽게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해 항간에는 필부였던 ‘봉하대군’에 비하여 상당기간 세력가로 군림한 ‘영포대군’에 줄을 대려는 사람이 많아도 한참 더 많았다는 소문이 자자하다.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에게는 진정성과 신뢰에 큰 의심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잘 가시라, 노무현 전 대통령. 사나이 한 평생 화통하게 사시고 누구도 원망하지 말라며 이렇게 떠나가시게 해 국민으로서 마음이 무겁다. 때로 의심하고 가혹하게 대한 세상을 모두 다 용서하고 훌쩍 가신 당신에게 평화만 있으라. 그곳에서 당신이 꿈꾸던 멋있는 세상을 만드시라. 마을 한편에 작은 비석 하나 세워달라고 했지만 온 국민의 마음에 남아 있으리라.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 삼권분립에 앞장섰다고.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 교수
2009-05-26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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