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정치인의 삭발/김상연 논설위원

[씨줄날줄] 정치인의 삭발/김상연 논설위원

김상연 기자
김상연 기자
입력 2021-06-03 20:20
수정 2021-06-04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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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와 의사 등에 따르면 단식은 뇌 건강에 매우 안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 제때 영양분을 공급받지 못하면 뇌세포가 사멸하거나 손상될 수 있다. 실제 ‘단식 투쟁’ 후 언어 능력이 어눌해지거나 총기(聰氣)가 흐려진 정치인들을 본 적이 있다. 하지만 이런 정치인은 드물다. 대부분의 정치인은 장기간 단식 투쟁 후에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건강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초능력’을 보여 준다. 단식 기간 중 어떤 식으로든 따로 영양분을 섭취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제 과거 한 국회의원이 단식 투쟁 중 몰래 빵을 먹었다고 상대 당에서 폭로하자 ‘나는 결코 빵을 먹지 않았다’고 강변하는 보도자료를 배포한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단식의 주제는 온데간데없이 빵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를 두고 정치 공방이 벌어진 것이다.

삭발은 단식에 비해 ‘가성비’가 좋은 투쟁 방식이다. 건강에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시각적으로는 더 선명한 효과를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갈수록 단식보다는 삭발이 더 선호되는 추세다. 2년 전 자유한국당(국민의힘의 전신)은 릴레이 삭발 투쟁까지 벌였다.

대한민국 정치에서 제일 먼저 사라져야 할 문화를 꼽으라고 누가 묻는다면 단식과 삭발이라고 답하고 싶다. 오늘날 이 두 가지는 정치인 본인의 위상에만 도움이 될 뿐 공동체 전체에는 큰 해악을 끼치기 때문이다. 단식 투쟁은 쉽게 말해 ‘요구 사항을 들어주지 않으면 굶어 죽겠다’는 섬뜩한 행동이다. 삭발 역시 신체발부수지부모(身體髮膚受之父母)의 교리에 입각해 생명과도 같은 머리카락을 잘라내 버리겠다는 자해적 행동이다. 단기적으로 정치인은 그런 투쟁으로 목적한 바를 달성할지 모르지만, 사회 저변에는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극단주의 문화의 씨가 뿌려지게 된다.

군사정권 시절도 아니고 세계 10위권 경제강국에 국민이 직접 선거권을 행사하는 민주국가의 정치인이 삭발이나 단식을 한다면 외국인들이 이상하게 볼 것이다. 역으로 미국 연방의회 의원이 단식이나 삭발을 한다면 얼마나 이상하게 보이겠는가. 뿐만 아니라 우리보다 민주주의가 뒤처진 나라에서도 단식과 삭발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 나라들이라고 절박한 정치적 이슈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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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04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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