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흔들리는 풍류/이동구 수석논설위원

[씨줄날줄] 흔들리는 풍류/이동구 수석논설위원

이동구 기자
입력 2021-05-10 20:26
수정 2021-05-11 0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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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마실 핑계만큼 다양한 것도 드물다. 기분이 좋아서 한 잔, 경치가 멋있어 한 잔, 음식이 맛있어 한 잔, 친구가 찾아와서 한 잔. 물론 반대의 경우도 당연히 술 마실 이유가 된다. 우리 조상은 아예 ‘풍류’(風流)라는 말로 벼슬아치나 호방한 남자들은 반드시 술은 제법 먹을 줄 알아야 하는 자질로 미화했다. 경치 좋은 곳이나 연회에 참석하면 으레 술과 관련된 멋있는 시(詩) 몇 수 정도는 읊을 줄 알아야 풍류를 아는 선비로 대접받았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랑을 받는 김삿갓(김병연ㆍ1807~1863년)은 일생을 떠돌며 자연과 함께 술을 벗 삼으며 가슴속 응어리들을 풀어냈다. ‘엽전 일곱 냥을 주머니 속에 깊이깊이 간직했건만 석양에 주막을 만나니 아니 마시고 어쩌리’라는 시가 전해진다. 송강 정철(1536~1593년)은 술을 얼마나 사랑했으면 ‘장진주사’(將進酒辭)라는 권주가를 후세에 남겼을까. “한 잔 먹세 그려, 또 한 잔 먹세 그려, 꽃나무 가지 꺾어 술잔 수를 셈하면서 한없이 먹세 그려.” 인생이란 허무한 것이니 후회하지 말고 죽기 전에 술을 무진장 먹어 그 허무함을 잊어버리자고 했다.

이 풍류 유전자 때문인지 요즘도 경치 좋은 곳에서 술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국립공원 주변이나 유명 관광지가 아니더라도 웬만한 산과 계곡, 바닷가, 강가 등에서는 삼삼오오 벌인 술판을 쉽게 볼 수 있다. 음식점이나 편의점이 아닌 길거리 야외 공간에서도 술을 마신다. 혼술을 즐기는 이를 보는 것도 어렵지 않다.

상수도원 보호구역이나 국립공원 내가 아니면 야외에서 술을 마셔도 딱히 제재할 법적 근거도 없다. 음주 후 고성방가, 폭력 등으로 소란을 피워 주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그냥 지나치게 된다. 서울시는 2018년부터 음주청정지역을 지정해 주변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줄 경우 과태료를 부과하는 조례를 만들었다고 하지만 이를 알고 있는 시민은 별로 없다.

최근 서울 한강시민공원에서 친구와 술을 마신 대학생이 사망한 뒤로 야외나 길거리에서의 음주행위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다. 부산의 해운대 해수욕장에서는 종종 젊은 외국인들이 단체로 술을 먹고 소란을 피우는 바람에 시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고 한다.

차제에 공공장소의 금주구역 확대나 야외, 길거리 등에서의 음주 행위를 제재하자는 여론도 있다. 실제 공원이나 길거리에서 음주를 제한하는 나라는 102개국에 달한다는 세계보건기구(WHO)의 조사도 있다. 우리도 국민건강증진법에 따라 자치단체가 금주구역을 지정할 수 있다니 조만간 야외에서 술을 즐기는 행위는 줄어들 것 같다. 풍류나 낭만보다 안전이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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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donggu@seoul.co.kr
2021-05-11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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