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일본판 블랙리스트/황성기 논설위원

[씨줄날줄] 일본판 블랙리스트/황성기 논설위원

황성기 기자
황성기 기자
입력 2020-10-05 17:34
수정 2020-10-06 0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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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벌집, 그것도 대형 말벌집을 건드린 형국이다. 우리의 학술원과 비슷한 일본학술회의(SCJ)의 신규 회원 후보 105명 가운데 아베 신조 정권 때부터 ‘눈엣가시’로 여겨 온 6명을 제외하고 임명한 사건이 일파만파로 확대되고 있다.

100억원이 넘는 국가 예산이 지원되는 내각부 산하의 기관인 만큼 형식상 총리가 임명한다지만 사실상 일본을 대표하는 최고 권위의 지성집단 SCJ가 추천한 후보들은 자동으로 임명이 이뤄진 전례에 비춰 보면 지극히 이례적이다.

임명에서 누락된 이들은 아베 정권이 추진한 안보법제나 악법으로 비판받은 ‘공모죄법’, 개헌 등에 이의를 제기한 학자들이다. 그러나 스가 총리는 “적절히 대응한 결과”라면서도 6명을 배제한 이유를 밝히지 않고 있어 일본판 블랙리스트 의혹으로 번질 조짐마저 보인다. 아사히신문은 지난 3일자 사설에서 “과거에 예가 없는 폭거”로 규정하고 “다른 연구자, 나아가 SCJ의 향후 움직임을 견제하려는 것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SCJ는 1949년 창설돼 이듬해 ‘전쟁을 목적으로 한 과학연구는 절대 행하지 않는다’는 성명을 낸 이후 이 방침을 지켜오고 있다.

노소를 불문하고 학자들의 항의 성명이 잇따르는 등 반발이 예사롭지 않다. 4000명을 회원으로 둔 ‘일본과학자회의’는 “학자의 위기는 일본의 장래를 위태롭게 할 수 있다. 정부 개입을 취하하라”는 담화를 냈다. 이들은 1983년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가 국회에서 ‘학술회의가 추천한 자는 거부하지 않는다’고 정한 지침을 스가 정권이 바꾸는 것은 용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전국대학원생협의회’도 “미래 학문을 짊어질 우리들로서는 결코 간과할 수 없다”는 성명을 냈다.

스가 총리가 정권 기반을 다져야 할 취임 초반부터 왜 학자들 인사까지 시시콜콜 간섭하는 ‘무리수’를 두는지에 대해서는 설이 분분하다. 장기 집권을 내다보고, 비판의 목소리를 싹부터 자르겠다는 권위주의 성향이 드러났다는 분석도 있지만 ‘아베 총리ㆍ스가 관방장관’ 초창기에 내각인사국을 만들어 관료를 손바닥 위에 놓고 좌지우지하고 장악했던 쏠쏠한 재미가 몸에 밴 것 아닌가 하는 추정도 그럴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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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06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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