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전범기업 조례 유감/황성기 논설위원

[씨줄날줄] 전범기업 조례 유감/황성기 논설위원

황성기 기자
황성기 기자
입력 2019-09-04 20:50
수정 2019-09-05 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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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의 경제보복에 대항하는 지방의회의 움직임 가운데 눈에 띄는 게 ‘전범기업 조례’ 제정이다. 충청북도 의회가 스타트를 끊어 ‘충북도·교육청 일본 전범기업 제품 공공구매 제한에 관한 조례안’ 등 4건을 지난 2일 통과시켰다. 다소의 시차는 있겠지만, 나머지 16개 광역 시도의회에서도 비슷한 조례안이 무더기로 통과될 것으로 예상된다. 조례안은 ‘대일항쟁기 당시 강제동원 등으로 대한민국 국민에게 피해를 끼쳤음에도 공식 사과 및 배상을 하지 않은 일본 전범기업이 생산한 제품에 대해 공공구매를 제한하는 사항’을 규정하고 있다.

국회에서도 일본 전범기업에 대한 국민연금공단의 투자 제한과 공공사업 입찰, 수의 계약을 금지하는 제재 법안이 쏟아진다. 그러나 국내법에 따라 해외 기업의 투자나 입찰을 제한하면 일본공적연금(GIF)의 한국 기업 투자 제한의 대항 조치를 부를 수 있고, 세계무역기구(WTO) 정부 조달 협정의 국내외 무차별 원칙에도 어긋날 수 있어 법안이 폐기됐거나 계류 중이다.

이런 제약에도 광역 지방의회에서 전범기업 조례 제정이 활발한 것은 선언문처럼 만들었기 때문이다. 충북도의회의 조례 4조에는 ‘도지사는 일본 전범기업 제품을 공공구매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돼 있다. 즉 전범기업 제품의 구매를 제한하지 않고 ‘노력’이란 표현으로 재량을 부여했다.

예를 들어 충북도와 교육청이 디지털 카메라를 구매한다고 하자. 국무총리실 ‘대일 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 자문위원회’가 조사해 발표한 전범기업 299개 가운데 현존하는 284개 기업에는 니콘, 캐논이 들어 있다. 의무는 아니지만 이들 기업의 카메라는 도지사의 ‘노력’에 의해 구매하지 않을 수 있다. 일본 제품의 구매가 어느 정도에 이르는지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정확히 파악돼 있지 않지만 마음만 먹으면 시도에서 구매를 선별할 수 있기 때문에 일본으로선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사람·돈·물건의 자유로운 왕래를 목표로 하는 무역질서 속에서 지방의회가 특정 국가의 특정 기업 제품을 제재하는 게 옳은지는 생각해 볼 문제다. 국민 감정에 편승해 ‘전범기업’이란 국제적으로 공인받지 않은 명단에 기초한 제재는 또 다른 분쟁을 부를 수 있다. 비슷한 조례를 만들려는 서울시의회에 대해 외교부와 서울시가 반대 입장을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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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05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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