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정동 야행과 밤 축제/강동형 논설위원

[씨줄날줄] 정동 야행과 밤 축제/강동형 논설위원

강동형 기자
입력 2016-05-26 21:22
수정 2016-05-26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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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 정동은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곳이다. 정동(貞洞)의 ‘정’은 ‘정숙하다’는 뜻을 지녔다. 정숙하다는 말은 여성에게 그것도 나이가 지긋한 부인에게 주로 사용한다. 조선시대 당상관의 부인을 높여 정경부인(貞敬夫人)이라 부른 것도 정숙함을 부인의 덕목으로 삼았던 그 시대의 유물일 것이다. 이것만 봐도 ‘정동’이라는 지명의 ‘정’이 여인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정동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계비인 신덕왕후의 무덤인 ‘정숙한 부인의 무덤’이라는 의미의 정릉(貞陵)에서 유래했다. 원래 이곳에 정릉이 있었지만 태종이 즉위하면서 정릉을 도성 밖인 현재의 성북구 정릉으로 옮겼다.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처음에는 대정동과 소정동으로 분리했다가 1914년 정동이라는 이름으로 통합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덕수궁을 품고 있는 정동은 왕가의 이야기는 물론이고 미국공사관과 러시아공사관, 배재학당, 경성방송국, 손탁호텔, 정동 제일교회 등 각종 유서 깊은 문화재들이 즐비하다. 정동 일대에서 오늘부터 이틀 동안 ‘정동 야행’ 행사가 열린다. 지난해 시작한 정동 야행은 봄, 가을 두 차례 열리며 지난가을 정동 야행 때는 10만명이 다녀가 한국을 대표하는 밤 행사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 올해도 덕수궁 고궁음악회, 성공회수녀원 관람, 영국대사관 관람, 버스킹, 길거리 퍼포먼스 등 다양한 행사가 야행객을 기다린다. 계절의 여왕 5월의 밤을 즐길 좋은 기회다.

‘00 야행’은 올해 들어 지방자치단체의 대표적인 문화상품으로 자리잡았으며 정동 야행이 원조격이다. 정동 야행의 인기몰이에 힘입어 문화재청은 올해 야행 프로그램 10개를 선정했다. 정동 야행은 밤 잔치의 시작을 알리는 첫 행사다.

야행 프로그램 10선의 이름도 재미있다. 정동 야행을 시작으로 부산에서 6월 3일부터 이틀 동안 개최되는 야행의 이름은 ‘피란수도 부산 야행’이다. 6·25전쟁 당시 임시수도였던 부산 서구 일대에서 개최된다. 이어 7월 2일부터는 ‘사비 야행 백제의 밤, 세계 문화유산을 깨우다’, 8월 5일과 6일에는 ‘오색달빛 강릉 야행’, 8월 12일부터 사흘 동안 ‘순천문화읍성 달빛야행’, 8월13일부터 ‘군산 야행, 여름밤 군산 근대문화유산 거리를 걷다’가 잇달아 개최된다. 8월19일부터 열리는 야행은 ‘전주 야행, 천년벗담’, 8월 26일부터 사흘 동안 대구 중구에서 열리는 야행의 이름은 ‘근대로의 밤, 7야로(野路) 시간여행’, 9월 23일 시작되는 야행은 ‘청주 야행, 밤드리 노니다가’이다. 7월 29일과 9월 30일 두 차례 개최되는 ‘천년 야행, 경주의 밤을 열다’는 야행 프로그램의 종착역이다. 야행 행사가 열리는 지역의 공통점은 문화재가 밀집돼 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볼거리와 먹을거리가 풍성한 정동 야행을 포함한 야행 프로그램이 새 관광자원의 모델이 되기를 기대한다.

강동형 논설위원 yunbin@seoul.co.kr
2016-05-27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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