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오이소박이(장황과)는 고춧가루로 버무려진 지금의 여름철 별미 김치와 완전히 다르다. 오이 가운데를 둥글게 홈을 파서 후추로 양념한 으깬 두부를 그 속에 박아 넣고 끓인 간장을 부어서 하룻밤 삭힌 것이다. 맛이 깨끗하고 고소하며 짭조름해 반찬으로 손색이 없었다고 한다. 지금 고급 한정식 상에 올라도 될 만한 이 ‘명품’ 오이소박이를 만드는 법은 놀랍게도 조선시대 후기 실학자 풍석 서유구(1764~1845)가 쓴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중 ‘정조지’(鼎俎志)에 깨알같이 적혀 있다.
풍석은 18세기 말 다산 정약용과 어깨를 나란히 하던 당대 최고의 실학자다. 벼슬에서 물러난 뒤 고향에서 농사짓고 어부로 지내면서 30여년간 쓴 책이 바로 임원경제지다. 이 책은 농사, 의류, 건축, 의료 등 16개 분야에 걸쳐 113권 52책 2만 8000여개 항목으로 구성된 방대한 생활백과서다. 그중 정조지는 음식 백과로 각종 음식과 술 만드는 방법 등을 다루고 있다. 정은 솥을, 조는 도마를 뜻한다.
출세의 길이 막혀 있던 몰락한 양반이나 중·서인 출신들이 실학을 연구하던 당시에 잘나가던 권세 가문의 후손인 풍석이 생활백과사전, 더구나 요리서를 냈다는 것이 놀랍다. 하지만 실사구시(實事求是)를 중시하던 그의 가문의 학풍과 분위기를 들여다보면 수긍이 간다. 풍석의 7대조인 서성은 약산춘이라는 술을 빚었을 정도로 그의 조상은 글 읽기에만 몰두한 책상물림 선비가 아니었다. 특히 그의 조부 서명응은 신혼 초 어머니한테 요리를 배웠다고 한다. 그의 부엌 출입을 아내가 걱정할 정도였단다. 조부는 규장각 설립을 주도해 정조로부터 ‘규장각의 실제 주인’이라는 소리를 듣고 대제학까지 지냈다. 풍석의 어머니 한산 이씨 또한 “재료는 적게 쓰면서 많이 들어간 요리와 맞먹었고, 사람을 적게 부리면서도 많이 부린 요리와 맞먹었다”고 할 정도로 음식 솜씨가 뛰어났다고 한다.
무엇보다 지식은 개인의 입신양명이나 권력을 위해서가 아니라 민생을 위해 써야 한다는 철학을 가진 풍석이었기에 민초들의 삶에 필요한 실용서인 요리책까지 쓰지 않았나 싶다. 실제로 그는 노모를 위해 요리까지 직접 해 아침저녁 상을 차려 올렸다. 그러면 어머니는 “이 가득 차린 음식이 모두 자네 열 손가락에서 나왔구먼” 하면서 좋아했다고 한다.
최근 출판업계에서 ‘집밥’ 요리책이 인기라고 한다. 진짜 집에서 먹는 듯한 건강한 상차림을 위해 스타 요리사들과 요리책을 내려고 출판가에서는 경쟁이 붙을 정도라고 한다. 정조지에서 “교묘함을 뽐내고 재물을 낭비하여 산가(山家)에서 품위 있게 먹는 데 적합하지 않은 음식은 모두 수록하지 않았다”고 할 정도로 그의 요리는 소박하면서도 건강해지는 ‘생명 밥상’이다. 그러니 ‘집밥’ 요리책의 원조는 풍석이 아닐까.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풍석은 18세기 말 다산 정약용과 어깨를 나란히 하던 당대 최고의 실학자다. 벼슬에서 물러난 뒤 고향에서 농사짓고 어부로 지내면서 30여년간 쓴 책이 바로 임원경제지다. 이 책은 농사, 의류, 건축, 의료 등 16개 분야에 걸쳐 113권 52책 2만 8000여개 항목으로 구성된 방대한 생활백과서다. 그중 정조지는 음식 백과로 각종 음식과 술 만드는 방법 등을 다루고 있다. 정은 솥을, 조는 도마를 뜻한다.
출세의 길이 막혀 있던 몰락한 양반이나 중·서인 출신들이 실학을 연구하던 당시에 잘나가던 권세 가문의 후손인 풍석이 생활백과사전, 더구나 요리서를 냈다는 것이 놀랍다. 하지만 실사구시(實事求是)를 중시하던 그의 가문의 학풍과 분위기를 들여다보면 수긍이 간다. 풍석의 7대조인 서성은 약산춘이라는 술을 빚었을 정도로 그의 조상은 글 읽기에만 몰두한 책상물림 선비가 아니었다. 특히 그의 조부 서명응은 신혼 초 어머니한테 요리를 배웠다고 한다. 그의 부엌 출입을 아내가 걱정할 정도였단다. 조부는 규장각 설립을 주도해 정조로부터 ‘규장각의 실제 주인’이라는 소리를 듣고 대제학까지 지냈다. 풍석의 어머니 한산 이씨 또한 “재료는 적게 쓰면서 많이 들어간 요리와 맞먹었고, 사람을 적게 부리면서도 많이 부린 요리와 맞먹었다”고 할 정도로 음식 솜씨가 뛰어났다고 한다.
무엇보다 지식은 개인의 입신양명이나 권력을 위해서가 아니라 민생을 위해 써야 한다는 철학을 가진 풍석이었기에 민초들의 삶에 필요한 실용서인 요리책까지 쓰지 않았나 싶다. 실제로 그는 노모를 위해 요리까지 직접 해 아침저녁 상을 차려 올렸다. 그러면 어머니는 “이 가득 차린 음식이 모두 자네 열 손가락에서 나왔구먼” 하면서 좋아했다고 한다.
최근 출판업계에서 ‘집밥’ 요리책이 인기라고 한다. 진짜 집에서 먹는 듯한 건강한 상차림을 위해 스타 요리사들과 요리책을 내려고 출판가에서는 경쟁이 붙을 정도라고 한다. 정조지에서 “교묘함을 뽐내고 재물을 낭비하여 산가(山家)에서 품위 있게 먹는 데 적합하지 않은 음식은 모두 수록하지 않았다”고 할 정도로 그의 요리는 소박하면서도 건강해지는 ‘생명 밥상’이다. 그러니 ‘집밥’ 요리책의 원조는 풍석이 아닐까.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2015-07-29 2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