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대통령의 노래/최광숙 논설위원

[씨줄날줄] 대통령의 노래/최광숙 논설위원

최광숙 기자
최광숙 기자
입력 2015-06-29 23:02
수정 2015-06-29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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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쩌둥 사망 이후 화궈펑과 권력 투쟁을 벌이던 덩샤오핑 중국 전 주석은 1979년 9월 중국 지도자로는 처음으로 미국 방문길에 올랐다. 그는 방미 기간 중 카우보이 모자를 눌러쓰고 로데오 경기를 관람했다. 공식석상에서 ‘로큰롤의 황제’ 엘비스 프레슬리의 ‘러브 미 텐더’를 열창하기도 했다. 공산주의 중국에 대해 거부감과 경계심을 갖고 있던 미국인들은 자신들의 우상 엘비스의 노래를 부르는 그를 보고 친근한 지도자로 생각을 바꿨다고 한다.

그로부터 27년 후인 2006년 6월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 역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함께 엘비스의 생가가 있는 멤피스를 방문해 기타 치는 엘비스를 흉내 내며 서투른 영어 발음으로 ‘러브 미 텐더’ 등 엘비스의 노래를 불렀다. 엘비스의 열렬한 팬인 고이즈미는 이를 미국과 일본 두 나라의 밀월관계를 보여 주는 데 적극 활용했다.

노래 솜씨가 꽤 좋았던 노태우 전 대통령도 멕시코를 방문했을 때 애창곡 ‘베사메무초’를 불러 멕시코 국민들로부터 호평을 받은 적이 있다. 이렇듯 정치인들의 노래는 일반인들이 자유롭게 부르는 노래와 다르다. 노래를 부르는 장소와 선곡 등에는 보이지 않는 메시지가 숨겨져 있다. 외교 무대에서는 외교 행위가 되고, 정치 무대에서는 고도의 정치행위가 되는 것이 정치인들의 노래다.

최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선택한 노래는 찬송가다. 그는 지난 26일 백인 청년의 총기 난사로 희생된 클레멘타 핑크니 목사의 영결식에 참석해 갑자기 반주도 없이 찬송가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불러 잔잔한 감동을 줬다. 대통령의 예상치 못한 노래에 이내 6000여명의 참석자들은 모두 일어나 대통령과 함께 찬송가를 불렀다고 한다.

그 뒤 연설에 나선 오바마는 희생자 9명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그들은 은총을 받았다”고 말했다. 백인에 대한 성토보다는 신의 은총을 얘기하며 이번 사건으로 상처받은 미국민들을 위로했다고 한다. “신의 은총은 그냥 얻어지는 게 아니다.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진다. 인권 문제, 흑백 갈등을 하룻밤 사이에 개선할 수 없다”고 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오래 기억될, 사회 통합에 대한 역대 대통령 최고 수준의 메시지”라고 평가했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은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향해 ‘배신의 정치’를 한다며 국민 심판까지 운운했다. 당에 ‘퇴출’을 명해 여권 내 친박·비박 간 갈등이 고조되는 분위기다. 공당의 원내대표를 온 나라가 떠들썩하도록 거칠게 공개적으로 질책하고, 이에 어린아이처럼 처절하게 반성문을 읊조리는 원내대표를 보면서 누가 옳고 그르고를 떠나 국민들의 마음은 편하지가 않다. 노래 한 구절로 상처받은 국민들을 하나로 묶어 준, 오바마의 통합 리더십이 더욱 돋보이는 이유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2015-06-3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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