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사무소가 행정의 모세혈관 역할을 하는지를 보여 주는 사례다. “시골에서 같이 컸던 이웃이 논마지기를 팔라고 한다. 면사무소에 시세를 알아보니 제시한 액수의 두 배더라.” 도회지에 사는 그는 금방 알 수 있었다. 면사무소 직원은 이처럼 지역 일들을 빠끔하게 안다. 막걸리 한 사발도 나누며 지내니 당연하다. 누가 도시에 살면서 주소를 옮겨 농어촌 보조금을 합법적 편법을 써 타 먹는지도 꿰차고 있다.
행정자치부 장관이 최근 “밖으로 나가 눈으로 보라”며 고위직들의 등을 떼밀었다. 지난달 말 5일간 경력 25년 이상의 국장급 17명이 사무실을 비웠다. 각자 구상했던 곳에 나가 이른바 ‘재량 근무’를 했다. 장관은 “등산도 좋고, 영화를 봐도 좋다”고 했다. 한 간부는 온라인 민원 발급 서비스인 ‘민원24’의 사용 현황을 현장에서 살폈고, 어떤 이는 주민센터에서 인허가 민원을 지켜봤다. 주로 혁신적인 정보기술(IT) 기업을 방문했다고 한다. 신분을 숨기고 민원 현장에 가고, 산수 좋은 북한강을 산책하고 왔다는 간부도 있다. “우물 안의 개구리였다”는 말도 와 닿지만 “산책을 했다”는 간부에게서 많은 아이디어가 나올 것으로 믿고 싶다. 공무원 복무규정에 유연근무제가 있지만 활용한 적이 없었다.
신문사 햇병아리 기자에게 불문율처럼 내려오는 말이 있다. 큰 사고가 터져 현장행 지시가 떨어지면 어린 기자는 가는 내내 불안해한다. 리드에는 무엇을 끄집어 내고, 그 많은 내용을 어떻게 풀어 갈까. 현장에 도착하면 불안은 싹 없어진다. 다음엔 쓸거리가 많아 무엇을 골라야 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현장이 없는 글엔 불 같은 야단이 전화통을 울린다. 경험이 많은 데스크는 글이 좀 헝클어져도 현장의 구조와 목격자 멘트 등이 나오면 이를 글의 리드에 올린다. 잘 썼지만 현장이 부족한 기자보다 칭찬받는 건 당연하다. 행정인들 그 가치가 다를 건 아니다.
장관은 간부들에게 “아이디어를 찾으라”고 했다. 하지만 채근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이들은 나라의 녹을 수십년간 먹어 온 고위 간부요, 일만큼은 몸에 배어 있다. 공직사회에도 이제 주위의 눈에 농땡이로 보일 만큼 책상을 엎어 놓는 혁신적이며 발전적인 행위가 있어야 한다. 사무실에서 짜내는 아이디어는 경직된 게 많다. 쉬는 날 소파에 기대 긁적거린 메모가 더 가치 있게 쓰일 때를 더러 경험한다. 행자부에는 직원만 보는 인트라넷이 있다. 잘 만들어진 보고서 말고 투박한 현장의 말을 골라 올려 보는 것이 취지에 맞는 방법이 아닐까. ‘보고서 쓰기 선수’인 직원들이 비웃을 내용을 올리는 간부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요즘에는 무거움보다 가벼움에서 가치를 찾는 때다. 17명의 간부가 한 해에 한 개씩만 현장을 정책에 접목하면 17개의 정책이 주민과 함께할 수 있다. 그런 까닭에 이거 좀 자주 해야 하겠다. 행정부의 근육이 체력단련실이 아닌 곡괭이질에서 키운 근육질로 바뀌게 말이다.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행정자치부 장관이 최근 “밖으로 나가 눈으로 보라”며 고위직들의 등을 떼밀었다. 지난달 말 5일간 경력 25년 이상의 국장급 17명이 사무실을 비웠다. 각자 구상했던 곳에 나가 이른바 ‘재량 근무’를 했다. 장관은 “등산도 좋고, 영화를 봐도 좋다”고 했다. 한 간부는 온라인 민원 발급 서비스인 ‘민원24’의 사용 현황을 현장에서 살폈고, 어떤 이는 주민센터에서 인허가 민원을 지켜봤다. 주로 혁신적인 정보기술(IT) 기업을 방문했다고 한다. 신분을 숨기고 민원 현장에 가고, 산수 좋은 북한강을 산책하고 왔다는 간부도 있다. “우물 안의 개구리였다”는 말도 와 닿지만 “산책을 했다”는 간부에게서 많은 아이디어가 나올 것으로 믿고 싶다. 공무원 복무규정에 유연근무제가 있지만 활용한 적이 없었다.
신문사 햇병아리 기자에게 불문율처럼 내려오는 말이 있다. 큰 사고가 터져 현장행 지시가 떨어지면 어린 기자는 가는 내내 불안해한다. 리드에는 무엇을 끄집어 내고, 그 많은 내용을 어떻게 풀어 갈까. 현장에 도착하면 불안은 싹 없어진다. 다음엔 쓸거리가 많아 무엇을 골라야 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현장이 없는 글엔 불 같은 야단이 전화통을 울린다. 경험이 많은 데스크는 글이 좀 헝클어져도 현장의 구조와 목격자 멘트 등이 나오면 이를 글의 리드에 올린다. 잘 썼지만 현장이 부족한 기자보다 칭찬받는 건 당연하다. 행정인들 그 가치가 다를 건 아니다.
장관은 간부들에게 “아이디어를 찾으라”고 했다. 하지만 채근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이들은 나라의 녹을 수십년간 먹어 온 고위 간부요, 일만큼은 몸에 배어 있다. 공직사회에도 이제 주위의 눈에 농땡이로 보일 만큼 책상을 엎어 놓는 혁신적이며 발전적인 행위가 있어야 한다. 사무실에서 짜내는 아이디어는 경직된 게 많다. 쉬는 날 소파에 기대 긁적거린 메모가 더 가치 있게 쓰일 때를 더러 경험한다. 행자부에는 직원만 보는 인트라넷이 있다. 잘 만들어진 보고서 말고 투박한 현장의 말을 골라 올려 보는 것이 취지에 맞는 방법이 아닐까. ‘보고서 쓰기 선수’인 직원들이 비웃을 내용을 올리는 간부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요즘에는 무거움보다 가벼움에서 가치를 찾는 때다. 17명의 간부가 한 해에 한 개씩만 현장을 정책에 접목하면 17개의 정책이 주민과 함께할 수 있다. 그런 까닭에 이거 좀 자주 해야 하겠다. 행정부의 근육이 체력단련실이 아닌 곡괭이질에서 키운 근육질로 바뀌게 말이다.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2015-02-02 3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