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신발기업의 귀환/손성진 수석논설위원

[씨줄날줄] 신발기업의 귀환/손성진 수석논설위원

입력 2014-09-26 00:00
수정 2014-09-26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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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까지 번성했던 우리나라 신발산업은 이후 급격히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 노동집약적 산업인 신발제조업은 임금상승에 따른 경쟁력 약화로 폐업하거나 중국, 동남아로 떠날 수밖에 없었다. 당시 국내에는 8대 신발 메이커가 있었는데 그중에 국제(왕자표), 태화(말표), 삼화(범표), 동양(기차표), 진양, 보생 등 6개 회사가 부산에 있었다. 경성고무가 군산에, 조일이 서울에 있었을 뿐이다. 부산이 신발산업의 메카가 된 것은 전시(戰時) 수요가 많던 6·25 전쟁 당시 임시수도였고 노동력이 풍부했으며 원료 수입이나 제품 수출이 용이한 항구도시였기 때문이다.

신발 산업의 호황으로 젊은이들이 농촌을 떠나 부산으로 몰려들었고 부산 경제도 활기가 넘쳤다. 퇴근 시간이면 공장 근처 술집은 빈자리가 없었다. 종업원들 사이에서는 보석계를 만들어 패물을 장만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부산 서면 근처에 보석 가게들이 우후죽순 들어선 것도 신발산업 덕이었다고 한다. 급성장한 부산의 신발산업은 거부와 재벌을 탄생시켰다. ‘정수장학회’의 모체인 ‘부일장학회’를 설립한 김지태의 삼화고무는 한때 종업원이 1만명을 넘었다. 김씨는 부산을 넘어 전국적인 갑부로 통했다. 양정모의 국제고무는 국제그룹이라는 재벌로 성장했다.

그러나 신발업계의 임금이 마지노선인 300달러를 돌파하면서 1987년부터 부산의 신발산업은 거의 몰락했다. 국제고무의 관계사인 진양고무는 1992년, 태화고무는 1994년 생산을 중단했다. 국제상사의 ‘프로스펙스’는 한일그룹으로 넘어갔지만 한일마저 부도나 이름만 지키고 있다. 고 현수명 회장의 동양고무는 화승그룹으로 발전해 ‘르까프’라는 상표를 만들었다. 최근 화승그룹은 모기업 ‘화승’을 다른 기업에 넘겼다고 한다. 태화고무 상표는 살아남아 ‘말표 고무신’과 ‘태화 고무장갑’은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다.

부산을 떠났던 신발업체들이 20여년 만에 돌아온다고 한다. 지난 23일 부산시는 중국 등으로 진출했던 신발기업 5개사와 ‘유턴 협약’을 체결했다. 저임금 메리트가 점점 사라지자 기업들이 국내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이른바 ‘리쇼어링’(re-shoring)이다. 부산시는 2006년부터 신발산업을 부흥시키고자 사업비를 지원하는 등 육성책을 펴왔다. ㈜에이로 등 중국에 진출한 기업들은 공장을 현지인에게 넘기고 부산에 다시 공장을 짓는다. ‘트렉스타’는 중국 톈진 공장의 생산 규모를 절반으로 줄이고 강서구 녹산공단에 새 사업장을 연다. 신발업체들이 외국으로 나가고 나서 산업공동화를 겪었던 부산으로서는 여간 반가운 소식이 아니다.

손성진 수석논설위원 sonsj@seoul.co.kr
2014-09-26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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