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대중탕의 추억/박홍환 논설위원

[씨줄날줄] 대중탕의 추억/박홍환 논설위원

입력 2014-04-17 00:00
수정 2014-04-17 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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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용 표를 한 장 쥐고 들어갔던 것 같다. 여러 가닥의 천으로 가려진 장막 너머 문을 열고 들어서면 마주보이는 벽에는 격자처럼 생긴 작은 상자들이 있고, 가운데쯤에는 대청마루가 떡 하니 놓여 있었을 것이다. 고무줄에 매단 이상한 모양의 열쇠를 작은 상자의 구멍에 넣어 꾹 누르면 ‘틱’ 하고 문이 열려 몇 번이나 장난을 쳤던 것도 같다.

어머니든 아버지든 누군가의 꾸지람에 옷을 벗어 작은 상자 속에 넣고, 알몸으로 미닫이 유리문을 열고 들어서면 엄청난 열기에 ‘훅’ 하고 숨을 들이켜야 했다. 내부는 안개가 낀 듯 수증기가 자옥해 마치 ‘미지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듯 조심스러웠다. 어디 그뿐이랴. 그 안의 기괴한 소리(한참 후에야 천장에 맺힌 물방울이 탕에 떨어질 때 나는 소리라는 걸 알았다)는 어린 사내아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도 무지막지한 공포였다.

현대식 사우나와 찜질방에 밀려 지금은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어린 시절의 대중목욕탕은 그렇게 기억된다. 한참 동안 그런 ‘트라우마’ 때문에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마냥 목욕탕 가기를 꽤 싫어했다.

최근 목욕탕 업주들의 모임인 한국목욕업중앙회가 여탕에 들어갈 수 있는 남자 아이의 연령 기준을 낮춰달라고 보건복지부에 공식 건의했다고 한다. 목욕실 및 탈의실에 동반 입장할 수 있는 남녀 연령을 만 5세로 규정해 놓은 현행 공중위생관리법 시행규칙을 바꿔 만 4세로 연령 기준을 낮춰달라는 뜻을 전달했다. 조숙한 아동이 많아져 여성 고객들이 여탕에 엄마와 함께 입장하는 남자 아이들의 시선을 매우 부담스러워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각종 미디어의 영향으로 아이들이 온갖 성(性)적인 정보에 노출돼 있어 성인의 몸에 대한 관심이 커가는 현실을 무시할 수는 없다는 주장도 일리는 있다. 그런 논란 때문에 만 7세 기준을 정했고, 2000년대 초 만 5세로 한 번 더 낮췄을 것이다. 부모 손에 이끌려 목욕탕에 가는 꼬마들이 뭘 알까 싶다가도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 “엄마와 함께 여탕에 다녀왔다”며 그곳의 풍경을 ‘무용담’ 늘어놓듯 세세하게 설명하던 친구를 생각하면 연령 기준은 필요한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미혼모나 미혼부, 또는 한 부모 가정의 이성 아이들은 어떻게 할 건가. 그 아이들은 4살만 넘으면 엄마나 아빠 손을 잡고 대중목욕탕에도 못 가게 될 처지에 놓였다. 부모와 함께 대중목욕탕에 다니는 것도 먼 훗날 추억으로 되살릴 수 있다면 그들은 어린 시절의 추억 하나를 잃게 되는 셈이다. 논란을 뛰어넘어 합리적인 조정이 필요한 이유다.

박홍환 논설위원 stinger@seoul.co.kr
2014-04-17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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