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장군의 묘/정기홍 논설위원

[씨줄날줄] 장군의 묘/정기홍 논설위원

입력 2013-11-29 00:00
수정 2013-11-29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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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년 전 우리 군(軍)에 탱크와 장갑차로 무장한 기계화사단은 딱 하나였다. 맹호부대로 불리는 수도기계화보병사단이다. 당시 북한에는 같은 급의 부대가 3개나 된다는 말도 있었다. 1980년대 중반에 기계화부대는 더 생겼다. 수도기계화사단의 탄생이 월남(베트남)전 참전에 대한 미국의 답례였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1973년 기계화사단으로 바뀐 이후 한동안 월남전에 투입됐던 탱크와 장갑차가 주류를 이뤄 기갑병의 고민이 이만저만 아니었다고 한다.

 이 부대에는 월남전을 겪은 간부가 많아 전장의 일화도 여럿 전한다. 애송이 소대장에게 목숨을 맡길 수 없다며 소대원들이 명령을 거부했다든가, 정글의 수풀 속에 매복한 베트콩의 총탄에 부대원을 잃었다는 꽤나 슬픈 얘기들이다. 반면 참전 선임하사(부사관)들이 “왕년엔 베트콩 몇 명은 죽였다”며 으스대는 모습도 어렵잖게 볼 수 있었다. ‘그 이름 맹호부대 용사들아~가시는 곳 월남 땅~’으로 불린 ‘맹호부대는 간다’란 노래에는 이같은 파월장병의 정서가 오롯이 녹아 있다. 월남전의 전사(戰史)는 끝이 없다. 맹호부대 외에도 청룡부대(해병2사단)와 백마부대의 전투사는 지금도 자주 입에 오르내린다. 청룡부대는 짜빈동전투를 승리로 이끌면서 ‘신화를 남긴 해병’이란 애칭도 얻었다.

 월남전에 파병된 한국군은 31만명을 조금 넘는다. 국군의 ‘양민학살’이 한때 논란이 된 적도 있지만 월남전은 낙후된 우리 경제에 크나큰 활력을 불어넣었다. 1965년 3월 비둘기부대(비전투부대)가 파병된 이후 미국의 경제지원액이 9억 2700만 달러에 달하고, 우리 기업들이 월남에서 벌어들인 금액도 5억 3700만 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이 돈의 상당수가 경부고속도로를 놓는 데 쓰였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월남전의 영웅’ 채명신 장군이 “파월장병이 묻힌 사병묘역에 안장해 달라”는 유언을 남겨 새삼 군인정신을 일깨우고 있다. 그는 월남 파병 당시 맹호부대장이었고, 초대 주월 한국군사령관을 지냈다. 세계 전투사에 게릴라전으로 유명한 월남전에서 그가 보여준 ‘적과 주민 분리 전술’은 당시 미군이 채택했을 정도로 탁월한 것이었다. 월남전 내내 ‘민심이 70%, 전투는 30%’라는 지론을 갖고 명령을 내렸다고 한다. 민심을 장악해야 민간에 숨은 베트콩을 색출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채 장군을 게릴라전술의 대가로 부르는 이유다. 월남전의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않고 있다. 우리의 장병 5000여명이 죽었다. 고엽제 피해 파월장병 1만 6579명이 미국의 고엽제 제조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도 했었다. 사병묘역을 택한 채 장군의 뜻이 월남전 전우들의 아픈 마음을 조금이나마 치유했으면 한다.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2013-11-29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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