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지하공간의 삶/정기홍 논설위원

[씨줄날줄] 지하공간의 삶/정기홍 논설위원

입력 2013-09-27 00:00
수정 2013-09-27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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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의 중부에는 수천개의 암석을 뚫어 만든 카파도키아 동굴이 있다. 데린쿠유라고 불리는 이 동굴 수도원에는 수천명이 살았다고 한다. 지하 55m에 20층의 주거공간을 갖췄으니 그야말로 가공할 만한 지하도시다. 이 밖에 이탈리아 로마 인근에 많은 카타콤, 루마니아 부쿠레슈티의 드라큘라 감옥 등 대규모 지하공간은 세계 곳곳에 존재한다. 지하 동굴의 삶이 얼마나 지난했을까. 하지만 그들은 어엿한 생활공간으로 활용한 흔적을 적잖이 남기고 있다. 이들의 생활 지혜는 다람쥐가 도토리를 땅속에 숨기듯 ‘곳간 본능’에서 나온 게 아닌가 한다.

현대인의 생활이 점점 지하로 이동하면서 지하공간을 대규모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포화상태에 이른 지상의 교통여건을 해소하고, 지상을 생활친화적으로 녹색공간화하려는 것이다. 프랑스 파리의 라데팡스 지구는 고속도로와 지하철도를 지하에 만들어 지상을 쾌적한 문화휴식공간으로 바꿨다. 영국~프랑스 간 해저터널도 두 지역을 3시간 만에 주파, 쾌속의 이동성을 자랑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이런 추세는 시작됐고 향후 급속한 물살을 탈 전망이다. 지하 40~50m에 건설하는 수도권광역급행열차(GTX)와 서울시가 추진하려다가 보류한 ‘U-스마트웨이’(지하자동차전용도로)가 그 대표적 모델이다. 여기엔 지하생활에 밀접한 부대시설이 자리잡게 된다. 88올림픽도로와 강북대로의 지하화도 중기적 미래시장으로 꼽힌다. 모두 지상과 지하의 상생 관계이다.

산업계의 움직임도 빨라졌다. 최근 지하터널 등 지하시설을 뚫는 신공법인 TBM(Tunnel Boring Machine)시장이 열리는 것도 다가온 블루오션 시장을 잡기 위한 잰걸음이다. 어제 국토교통부가 서울 등 57개 도시에 3차원(3D) 공간정보를 구축하겠다고 밝힌 계획도 지하시설물의 위치 등을 알려주는 지하생활공간 개념에 맞춘 발상이다. 화재가 났을 때 발생하는 고온열과 유독가스 분출 등은 인명과 구조물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힌다. 해결해야 할 과제다.

지하공간은 인류가 삶을 영위하면서부터 ‘저장의 장소’로 애용돼 왔다. 지상에 비해 온도 조건 등이 유리해 안정적인 저장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지구 최후의 날에 대비한 저장고’라는 말을 듣는 노르웨이 스발바르섬 130m 지하의 식물종자은행도 이 같은 배경에서 비롯됐다. 과학자들은 인류가 지진 등 재해로부터 생존할 수 있는 곳은 땅속이라고 한다. 현대판 지하도시가 수백년, 수천년 전 지하공간에서의 삶의 지혜를 더 빌려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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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27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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