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어보와 국새/손성진 수석논설위원

[씨줄날줄] 어보와 국새/손성진 수석논설위원

입력 2013-09-23 00:00
수정 2013-09-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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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어보(御寶)와 국새(國璽)는 왕실의 도장이라는 점에서는 같지만 다른 점도 많다. 어보는 왕실의 혼례나 책봉 등 궁중의식이나 시호나 존호를 올릴 때 사용한 의례용 도장을 말한다. 왕과 왕비뿐 아니라 세자와 세자빈도 어보를 받았고, 왕과 왕비의 어보는 사후 왕실 사당인 종묘에 안치했다. 왕과 왕비의 도장은 보(寶), 왕세자와 세자빈의 것은 인(印)이라고 했다. 어보는 금박을 입히거나 은 또는 구리, 옥과 같은 다양한 재질로 만들어졌다.

국새는 외교 문서나 행정에 임금이 사용하는 도장이다. 국새는 금으로 제작되었다. 왕권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국새는 중국에서 받았다. 조선 태조는 명나라에서 ‘朝鮮國王之印’이라고 적힌 옥새를 받았고 청나라가 들어선 뒤에는 이 옥새를 바치고 새 옥새를 받았다. 이 국새는 1897년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기까지 유일한 국새였다. 고종은 대한제국 수립 후 국새를 여러 개 더 만들었다. 국새는 옥새(玉璽), 국인(國印), 새보(璽寶), 대보(大寶), 어새(御璽), 금보(寶), 금인(印) 등 다양한 별칭으로 불렸으며 상서원이라는 관청에서 도승지의 책임 아래 보관했다. 옥새는 옥으로 제작했고, 금보는 재질이 금이었지만 옥새로 통칭했다. 중국 진시황이 ‘화씨옥’(和氏璧)을 얻어 천자의 인장을 제작한 것이 최초의 옥새다. 대한민국의 국새는 건국 이듬해인 1949년 5월 1대 국새가 만들어졌고, 최근 가짜 파동까지 겪으면서 5대 국새가 제작됐다.

어보나 국새나 관리는 엉망이었다. 언젠가 감사원이 조사했는데 ‘조선국왕지인’ 등의 국새가 1971∼1985년에 분실된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 남아 있는 조선 왕조의 국새는 2009년 발견된 대한제국기의 국새 ‘황제어새’(皇帝御璽)가 유일하다. 조선시대 어보는 총 366점이 제작되어 323점이 남아 있다. 43점은 행방이 묘연하다. 대부분 6·25전쟁 때 분실된 것으로 보인다. 남아 있는 어보 가운데 316점은 국립고궁박물관에 있고 나머지 7점은 국립중앙박물관과 고려대 박물관,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카운티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

LA 카운티 미술관에 있는 조선 중종 문정왕후의 어보가 한국으로 돌아온다고 한다. 6·25 당시 미군 병사가 종묘에서 가져간 것이다. 문정왕후의 존호(임금이나 왕비가 살아 있을 때 올린 칭호)인 ‘聖烈大王大妃之寶’(성렬대왕대비지보)’란 글자가 선명히 새겨져 있다. 혼란 통에 약탈당하거나 유출된 우리 문화재는 수십만점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반환은 되찾아 오려는 꾸준한 노력이 일궈낸 소중한 성과다.

손성진 수석논설위원 sonsj@seoul.co.kr

2013-09-23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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