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여적죄/문소영 논설위원

[씨줄날줄] 여적죄/문소영 논설위원

입력 2013-09-09 00:00
수정 2013-09-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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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죄(與敵罪). 국민의 귀에는 생소하게 들리는 죄목일 것이다. 거의 적용된 적이 없는 사문화된 형법 조항이기 때문이다. 형법 제93조에서 “적국과 합세해 대한민국에 항적한 자는 사형에 처한다”라고 여적죄를 규정해 놓았다.

이 여적죄를 국가정보원이 구속 중인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에게 새롭게 적용하려고 한다는 언론보도가 8일 나왔다. 법문북스의 법률용어사전에 따르면, “여기서 적국이라 함은 대한민국에 대적하는 외국 또는 외국인의 단체를 포함하며, 항적(抗敵)은 동맹국에 대한 것도 포함”한다.

이 여적죄는 내란(음모)죄와 어떤 차이가 있을까. 내란음모죄는 내란죄를 규정한 형법 제87조를 적용한 것으로, “국토를 참절하거나 국헌을 문란시킬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킨 죄”를 말하는 것으로 “예비·음모·선동·선전”도 모두 벌을 받는다. 즉, 국가의 내부로부터 위태롭게 하는 행위를 말한다. 반면 여적죄는 국가의 외부로부터 위태롭게 하는 외환죄의 일부다. 외환죄는 형법 92조부터 104조에 규정돼 있는데 외환유치죄, 여적죄, 모병이적죄, 시설제공이적죄, 시설파괴이적죄, 물건제공이적죄, 간첩죄, 일반이적죄, 전시군수계약불이행죄 등이다. 여적죄도 미수, 예비, 음모, 선동, 선전 등이 모두 처벌 대상이다.

어느 변호사의 법해석에 따르면 여적죄는 전쟁을 개시한다는 것을 전제로 성립하는 죄다. 이 해석에 따를 경우, 이석기 의원에게 여적죄를 적용하려면 국정원은 수사를 통해 전쟁을 개시하려 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또한 헌법상 반국가단체로 규정된 북한을 국가라고 ‘적극적’으로 해석해야 한다.

국정원이 ‘이석기 사건’ 발표 당시 언론 등에 제시했던 내란예비죄, 내란음모죄를 제쳐두고 낯선 여적죄 적용을 만지작거리는 이유가 궁금한 국민이 적지 않다. 한국전쟁도 겪었고 여전히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공안당국이 간첩죄나 내란죄 등의 혐의를 걸어 누군가를 구속·기소하면 국민은 일단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수십년 뒤 억울한 죽음들과 누명이 밝혀질 때마다 ‘공안당국이 양치기 소년이었다’며 혐오하게 된 사연도 잊어선 안 된다. 올 초 국정원 등이 한 서울시 공무원을 간첩혐의로 구속·기소해 국민이 그에게 손가락질을 했지만, 최근 무죄판결을 받았다.

국정원이 국가의 안전을 뒤흔드는 세력에게 단호하다면 늘 환영받는다. 하지만, 혹여 국정원의 정치·선거 개입을 막을 제도적 개혁이 필요하다는 여론을 호도하려고 국면전환용 물타기를 시도한다면 더 큰 개혁 요구라는 부메랑을 받게 될 것이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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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09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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