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사투리 언어학/정기홍 논설위원

[씨줄날줄] 사투리 언어학/정기홍 논설위원

입력 2013-09-02 00:00
수정 2013-09-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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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현대문학사에는 걸쭉한 사투리를 작품에 녹여낸 시인이 많다. 김영랑과 서정주는 전라도 말을, 박목월은 경상도 말을, 정지용은 충청도 말을 구수하고 질박한 시어로 승화시켰다. 북쪽지방의 소월과 백석도 사투리를 매개로 은밀한 지역정서의 내면을 다양하게 풀어낸 대표적인 작가다. 팔도사투리가 이처럼 드높은 ‘문학의 용어’로만 쓰이지 않음은 물론이다. 때론 재담과 육담이 어우러져 우리의 삶에 활력을 더해준다. 표준어가 못 미치는 사투리만의 깊은 맛이라고 할까.

요즘 온라인상에 사투리의 뜻을 가리는 내용들이 심심찮게 올라와 네티즌의 관심을 끌고 있다고 한다. 최근에는 ‘파이다’란 경상지방의 단어가 온라인 커뮤니티를 후끈 달구고 있다. 그 해석을 두고 ‘파다’의 피동형이니 원주율 ‘파이’(π)라느니 다양한 주장이 쏟아지고 있다. ‘좋지 않다’ ‘별로다’로 사용되는 말이라고 한다. 전라지방의 ‘거시기’도 이와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거시기’는 이달 초 개막하는 광주디자인비엔날레에서 ‘거시기, 머시기’(Anything, Something)란 주제로 삼을 만큼 화제어가 됐다. 경상지방의 ‘쫌’이란 단어의 용처도 거시기와 다르지 않다. 상대방이 마뜩잖은 행동을 할 때 “쫌! 쫌!”이라고 한마디를 하면 만사 통용이다.

대학 시절 “삼남지방 말이 표준어가 됐다면 보다 더 경제성이 있었을 것”이란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서울 중산층’이 쓰는 표준말은 음절이 많아 ‘더 수고스럽다’는 논리였다. 말을 적게 해 경제적이란 주장이다. 이와 관련해 특이한 것은 충청지방 말에서 짧은 문장이 눈에 많이 띈다는 점이다. “잠시 실례합니다”를 경상에선 “내좀 보이소”, 전라에선 “잠깐 보더라고”로 말하지만 충청에서는 “좀 봐유”로 짧게 끝내버린다. 같은 사례는 이외에도 많다. 통상 말이 느리다는 충청 사람의 간명한 말투가 이채롭다. 또 다른 사투리의 특징으로는 전라·충청·평안지방의 말은 장단 체계이지만 경상과 강원남부, 함경지방의 말은 고저 체계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보통 경상도 말이 시끄럽고, 전라·충청의 말이 나직하고 구수하게 들리는 것은 이 때문이다. 또한 충청·전라 사람은 이런 연유로 같은 장단 체계인 서울말을 더 쉽게 배우게 된다.

요즘 젊은이 사이에 표준어 특징인 ‘음의 장단’이 옅어지면서 말의 변별력이 점점 없어지고 있다고 한다. 언어학자들은 자극적인 인터넷 언어가 난무하면서 말투가 고저화되기 때문이란 결론을 내린다. 이러다가 종국엔 정감어린 사투리의 감칠맛마저 사라져 버리는 게 아닌가 걱정된다.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2013-09-02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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