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이 아이들이 무슨 죄/안미현 논설위원

[씨줄날줄] 이 아이들이 무슨 죄/안미현 논설위원

입력 2013-08-23 00:00
수정 2013-08-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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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미국은 이란의 이슬람원리주의를 견제하기 위해 이라크를 지원했다. 불리해진 이란은 이라크 북부지역 할라브자를 점령한 뒤 쿠르드족 게릴라를 지원했다. 이라크 집권세력에게 저항해온 쿠르드족을 이용해 이라크를 압박하려던 전술이었다. 위기감을 느낀 당시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은 1988년 3월 16일 할라브자에 사린가스를 살포했다. 5000명 가까이 죽고 7000여명이 다쳤다. 쿠르드인들이 ‘피의 금요일’이라고 부르는 할라브자 학살이다.

1995년 3월 20일 일본 도쿄시민들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출근을 서두르고 있었다. 관청들이 밀집해 있는 가스미가세키역에서 지하철 출입문이 닫히는 순간, 5개 전동칸에서 검은색 비닐봉지가 동시에 터졌다. 사린가스였다. 순식간에 사람들이 발작하며 쓰러졌고 지하철 안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12명이 목숨을 잃고 5500여명이 다쳤다. 신흥 종교집단인 옴진리교의 소행이었다. 도쿄 지하철 참사는 전쟁이나 분쟁이 아닌 평온한 출근길에 불특정 다수를 향한 무차별 살상이었다는 점에서 더 큰 충격을 주었다.

지난 21일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 인근에서 참사가 벌어졌다. 시리아 반군과 인권단체 등은 정부군이 사린가스 등을 장착한 로켓포를 쏘아 민간인 등 1300여명이 숨졌다고 주장했다. 현지 영상에 따르면 부상자들은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거나 입에 거품을 문 채 발작을 일으켰다. 그중 상당수는 어린이였다. 의료진은 “사상자 대부분이 팔다리가 경직되고 눈과 코 주위가 회색으로 변해 화학무기 노출이 의심된다”고 밝혔다. 시리아 정부군은 “안 그래도 유엔이 화학무기를 조사하기 위해 다마스쿠스에 들어와 있는데 그런 짓을 했겠느냐”며 반군 소행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누가 살포했든 화학무기 사용은 그 어떤 경우에도 용서받을 수 없는 반(反)인륜 범죄다. 화학무기냐 아니냐를 두고 논란이 있지만 우리에게도 베트남전 고엽제의 참상이 남아 있다. 소량으로도 엄청난 대량살상이 가능한 독가스의 공포 앞에서 국제사회는 1993년 화학무기를 생산하지도 사용하지도 말자는 내용의 금지협약(CWC)을 만들었다. 1997년 우리나라를 비롯해 65개국이 비준함으로써 효력이 발생했다. 시리아는 CWC에 가입하지 않았다. CWC 가입 자체가 화학무기와의 결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CWC에 가입한 러시아와 미국 등도 끊임없이 화학무기 사용 의혹에 시달리고 있다. 오랜 인류 비극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라도 시리아의 진상은 밝혀져야 한다. 또다시 의혹으로 끝나서도, 흥분과 규탄만 남아서도 안 된다.

안미현 논설위원 hyun@seoul.co.kr

2013-08-23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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