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새벽 첫 배를 타려고 항구에 도착했는데 안개가 자욱하다. 관광객들이 몇 번이고 배가 뜨겠느냐고 물어도 무뚝뚝한 선장은 “글씨”만 되풀이한다. 성마른 외지인이 “해가 나니 곧 배가 뜨겠지요?”라고 채근했다. 뭍사람의 무식이 안타까웠던지 선장의 답이 길어졌다. “해는 문제가 안 뒤여. 바람이 불어야제. 바람만 불면 안개가 확 벳개진당께.”
아닌 게 아니라 일출이 한참 지났는데도 안개는 요지부동이었다. 포기해야 하나 고민하는데 갑자기 선원들의 움직임이 부산해진다. 순간, 얼굴에 미세한 바람이 느껴졌다. 바람이 확실하게 얼굴을 때렸을 때는 이미 안개가 확 벗겨진 뒤였다. 나그네의 옷을 벗긴 것은 바람이 아니라 해님이었는데….
역시, 절대강자는 없었다.
2022-07-22 2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