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세상 생각/손성진 논설고문

[길섶에서] 세상 생각/손성진 논설고문

손성진 기자
입력 2019-10-16 23:18
수정 2019-10-17 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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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랍시며 현학적인 낱말 몇 개로 잘난 척하는 짓이 부끄러운 줄은 안다. 정작 깊은 덕망과 식견을 가진 이들은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는 음지에서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업덕을 쌓고 있다.

그런가 하면 한 돈쭝도 안 되는 얄팍한 지식으로 학자인 척, 최고인 척하며 설치는 사람들은 보기에도 꼴사납다.

시절이 하수상해질수록 은둔한 재목들은 현실과 담을 쌓고 꼭꼭 숨어버리니 얼치기들이 더욱 날뛴다. 그런 사람들이 앞으로 나서고, 또 나서도록 이끌고 밀어줘야 하는데 그러지 않으니 문제다.

세상이 시끄러울 때 선비들이 초야에 묻혀 학문을 닦는 데 몰두한 것은 조선시대에도 그랬긴 하다. 정치나 사회나, 이리저리 흔들리는 시국의 중심을 잡아줄 원로들은 어디에 있는지, 괜히 남 탓하며 문득 원망을 느낄 때가 있다.

독재 정치가 이승만도 가인 김병로 선생 같은 인물을 중용함으로써 자신의 마음이 완전히 비뚤어지지 않았음을 보여 주었다. 가인과 같은 시대의 표상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도덕과 윤리의 붕괴만은 막을 수 있었다고 굳게 믿는다.

좌든 우든, 옳은 소리라고는 할 줄 모르는 위정자들을 볼 때 이 시대가 수십, 수백 년 전보다 조금도 나을 것 없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삭일 수 없다.

sonsj@seoul.co.kr
2019-10-17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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