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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시절 휴일이면 아버지를 따라 낚시하러 다녔다. 새벽에 집을 나서면 언제나 청진동 해장국집에 갔다. 지금은 정독도서관이 된 경기고등학교 아래 화동에 살던 1960년대 후반이다. 그다지 아름답지 않은 선지는 좀체 익숙해지지 않았지만 해장국은 어린아이에게도 맛있었다. 입맛이 돌아오기 전이라며 ‘맛보기’로 시키는 아버지가 원망스러울 지경이었다.그때나 지금이나 청진동 해장국집의 새벽 손님은 일찌감치 일 나가는 부지런한 생활인들이 많다. 하지만 그 틈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젊은 남녀의 무리가 있어 어린 마음에도 궁금증이 일었다. 통행금지가 있던 시절 고고장에서 밤을 새운 형님, 누나들이었다는 사실은 시간이 흐른 뒤 알았다.
지난밤 술잔을 함께 기울인 동료 사이에 ‘점심에 해장해야지?’하는 문자가 오갔다. 누군가 떠올린 청진동 해장국으로 우리는 곧 의견을 모았다. 손님은 어르신부터 젊은이까지 다양했다. 상사의 강권에 어쩔 수 없이 따라나서는 ‘기피 메뉴’인 줄 알았더니 20대 여성끼리 먹는 모습도 보였다. 돌아보니 그 옛날에도 다양한 세대가 공존했던 청진동 해장국집이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2014-11-1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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