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죽순/정기홍 논설위원

[길섶에서] 죽순/정기홍 논설위원

입력 2013-06-11 00:00
수정 2013-06-11 00:08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어릴 적 대밭을 가진 집은 부잣집이었다. 기와집 담 너머엔 커다란 대밭이 늘 자리했다. 이들 집에서 대나무를 파는 날이면 부러움에 트럭을 졸졸 따라다니곤 했다. 주인 몰래 대밭에서 캔 장대로 만든 낚싯대로 피라미를 잡으러 갔다가 들켜 혼이 났고, 활을 만들어 ‘전쟁놀이’를 한다고 동네 골목을 휘젓고 다닌 적도 있었다. 그 시절 부잣집 대밭에 난 죽순을 먹어 본다는 건 그야말로 언감생심이었다.

며칠 전 형님댁에서 보낸 죽순 때문에 작은 소동이 일었다. 껍질을 벗기지 않은 죽순을 본 아내가 “껍질을 언제 다 벗기냐”며 나의 소중한 추억에 생채기를 내고 말았다. 죽순에 식이섬유가 많아 여성에게 좋다느니 갖은 말로 이해를 구해도 수그러들 기색이 없다. “사서 먹으면 되지….”

초고추장과 함께하는 죽순 맛은 별미다. 죽순은 금방 자라 때를 놓치면 제 맛을 보기가 어렵다. 오죽하면 ‘비 온 뒤 죽순 솟아나듯’이라 했겠나. 다음 날 살짝 데친 죽순이 밥상에 올랐다. 하지만 전날 소동 때문인지 옛맛을 반추하지는 못했다. 귀한 죽순을 너무 홀대한 건 아닐까.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2013-06-11 30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유튜브 구독료 얼마가 적당하다고 생각하나요?
구글이 유튜브 동영상만 광고 없이 볼 수 있는 ‘프리미엄 라이트'요금제를 이르면 연내 한국에 출시한다. 기존 동영상과 뮤직을 결합한 프리미엄 상품은 1만 4900원이었지만 동영상 단독 라이트 상품은 8500원(안드로이드 기준)과 1만 900원(iOS 기준)에 출시하기로 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적절한 유튜브 구독료는 어느 정도인가요?
1. 5000원 이하
2. 5000원 - 1만원
3. 1만원 - 2만원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