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생채기/김성호 논설위원

[길섶에서] 생채기/김성호 논설위원

입력 2010-04-14 00:00
수정 2010-04-14 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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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유증이 크다. 몸 곳곳에 난 생채기들. 넘어져 쓸린 자국이 분명한데. 어디서 어떻게 받은 훈장(?)인지는 기억이 나질 않고. 아무튼 술자리의 여파가 크다. 식구들의 눈총과 지청구야 받아 싼 것이지. 제 몸 하나 간수하지 못한 과보이니. 그래도 원인 모를 훈장은 야속하다.

오랜만에 걸어보는 석촌호수길. 호수를 휘돌아 흐르는 꽃바람이 좋다. 샛노란 개나리며 순백의 목련은 흐드러지고, 연분홍 진달래는 아직 수줍은 듯 조심스럽다. 꽃들도 서열이 있을까. 앞서거니 뒤서거니 얼굴을 내미는, 섭리에 순응하는 모습이 오묘하다. 생채기의 통증도 농염한 화신(花信)엔 감쪽같이 묻히니 신기하다.

일렁이는 꽃 물결의 한편에 초라하게 선 작은 나무. 꽃조차 피우질 못한 채 배리배리 고사 직전이다. 여기저기 난 생채기며 부러진 가지들. 얼핏 봐도 심한 훼손이 역력하다. 흐드러지는 봄꽃들의 경연에 숨소리도 내지 못하고 소외된 모습이 안쓰럽다. 잠시 잊었던 생채기의 통증이 살아난다. 생채기 난 숱한 마음들이야 오죽할까.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2010-04-14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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