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수정 편집국 부국장
문 대통령 국정 지지율이 60%를 넘는다. 문 대통령은 풍운의 정치가다. 제 앞가림도 못하다 녹아버린 야당 복에다 ‘시절 복’까지 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스스로를 “불행한 대통령”이라 불렀다. 퇴임 이후의 고민을 기록한 책 ‘진보의 미래’에 비애의 육성이 담겨 있다. “분배는 해보지도 못하고 분배 정부라고 뭇매만 맞았던 대통령”이라 자평했다. “보수시대의 진보 대통령이었기에 좌측 깜빡이 켜고 우회전할 수밖에 없었다”는 자기한계의 비감이다.
발목 묶였던 진보시대를 문 대통령은 활짝 열린 문으로 갈아탔다. 총선 결과가 증명했다. 진보보다 보수가 많아지는 유권자의 연령 분기점은 8년 전 47세였던 것이 지금은 57세. 무려 10년치나 확장했다. 진보의 토양은 상상 못했을 만큼 풍성하고 두꺼워졌다.
그런 자신감에 새 정책들을 쏟아내고 있다. 전 국민 재난지원금을 필두로 전 국민 고용보험제 논의에 이어 ‘한국형 뉴딜’이 나왔다. 재난위기를 극복하고 일자리를 만들자는 데 이의를 달 수는 없다. 효용과 방법론의 찬반 논란도 불가피한 진통이다. 문제는 전적으로 믿어도 되는 정책인지 그 자체에 의심을 거두기 어렵다는 대목이다. 이런 초대형 정책을 대체 언제 연구하고 준비했는지 설명해 주는 사람이 없다. 반쯤이라도 익은 정책인지 애초에 못 먹는 개살구인지를 가늠할 수가 없다. 대통령 중임제와 토지공개념 개헌론까지 불거져 있다.
거대정책 봇물에 호흡 조절이 힘들다. 코로나19로 일상을 지키기도 버거운 판에 청와대와 정부 여당이 무슨 그림을 왜 지금 그리는지 관심 쏟을 여력이 없다. 견제세력이어야 할 야당은 머리카락도 안 보이는데 시중의 소문만 무성해진다. 인기폭발 문 대통령이 장기집권하는 개헌, 진보 집권 30년에 쐐기를 박는 개헌. 여당이 개헌 방법론으로 들고 나온 국민발안제에도 불신이 쏠린다. 100만명 이상 유권자 동의를 받아 헌법 개정을 발의할 수 있다고? 균형추가 없어진 시민단체와 ‘문파’가 마음먹으면 식은 죽 먹기 아니냐. 제대로 운을 떼기도 전에 체념들이 쏟아진다. 진보 진영에서조차 “회도 불면서 먹으라”고 과속을 걱정한다.
문 대통령은 “경제 전시 상황”이라며 한국형 뉴딜에 드라이브를 건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도 대공황의 재난을 똑같이 언급하며 뉴딜을 추진했다. 루스벨트는 “적국의 공격을 받을 때 주어지는 만큼의 강력한 권한을 달라”고 정공법으로 대국민 호소했다. 재임에 성공해서는 뉴딜 정책들을 거침없이 밀어붙이려는 욕심에 사사건건 제동을 거는 연방대법원의 인적 구성을 크게 손보려다 실패했다. 공화당은 물론 민주당 내부에서까지 반대했던 결과다. 국가재난을 명분으로 대통령이 헌법기관을 무력화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에 내 편 네 편이 없었다. 미국 의회의 견제와 균형 시스템은 그 와중에도 제대로 작동했다. 헛발질을 모면한 루스벨트는 성공한 뉴딜로 남았다.
우리 상황은 그런가. 야당은 언제 제기능을 할지 기약이 없다. 대통령 해바라기 여당한테는 설령 청와대가 과속운전을 시도하더라도 제어 의지나 능력을 기대하기 어렵다.
국가재난의 위기에 권위주의는 권력을 거저 얻는다. 9ㆍ11 테러 직후 부시 대통령의 지지율은 90%였다. 나치 집권을 부른 1932년 독일 선거 이후의 상황은 오랜 범례다. 정치무대가 손쓸 수 없이 한쪽으로 기울어졌을 때 시민은 정권이 원하는 규칙에 체념하고 순응했다. 미국의 입바른 역사학자는 베스트셀러에서 이런 정치적 위험성을 ‘예측 복종’이라 이름붙여 경고한다.
“어용 시민이 어때서…” 개헌 논란 기사에 이런 댓글이 달렸다. 문 대통령 열성 지지자의 말이 아니다. ‘친문’과 열혈 진보 세력이 압도적 주류로 한 개의 목소리만 내더라도, 유능한 진보가 되지 못하더라도, 이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체념이다. 무서운 무기력증이다. 이런 절반의 국민 무기력증도 돌아봐야 한다. 정책의 속도를 조절하고 깊은 이해를 구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견제와 균형 속에서 끝내 성공했다는 그 소리를 듣겠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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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15 3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