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광장] 통일세보다 더 급한 것들/함혜리 논설위원

[서울광장] 통일세보다 더 급한 것들/함혜리 논설위원

입력 2010-08-19 00:00
수정 2010-08-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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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토~옹일…” 초등학교 시절 참 많이도 불렀던 노래다. 노래 때문인지 어렸을 땐 우리나라가 통일이 되는 것을 자주 상상했다. 마치 텔레비전이 흑백에서 컬러로 바뀌듯 남북으로 갈라졌던 우리나라가 어느날 갑자기 하나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철없는 생각이었지만 그때는 통일이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 모두들 그랬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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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혜리 논설위원
함혜리 논설위원
남북 분단 65년. 불행하게도 한국 사회에서 통일에 대한 열기는 사그라지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이런 경향은 점점 더 농후해지고 있다. 심지어 꼭 통일을 해야 하느냐는 반통일적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도 꽤 있다. 체제의 이질성과 더욱 벌어지는 남북 간 격차, 세대 간 인식차, 퍼주기식 대북 포용정책에 대한 반감 등 복합적인 이유가 작용한 결과다. 더구나 핵문제와 천안함 사태 등으로 안보 불안은 고조되고 남북 관계는 어느 때보다 경색돼 있다. 이런 마당에 통일이라는 단어가 우리 현실 속으로 돌아왔다. 이명박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통일세를 거론하면서다. 이 대통령은 “통일은 반드시 온다. 그날을 대비해 이제 통일세를 준비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통일의 당위성을 부정할 사람은 없다. 천문학적인 통일 비용이 들지만 어차피 들어가야 할 것이라면 이에 대비하는 것도 현명한 일이다. 하지만 상세한 설명 없이 거두절미하고 통일세를 들고 나온 것은 큰 실책이었다.

통일세 제안에 대해 영국 일간 더 타임스는 ‘첫줄부터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통일세는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 설익은 아이디어다. 막연한 미래상황을 상정해 세금을 거둬들이는 것이 과연 조세법정주의에 맞는지, 통일세 신설이 가져올 국민경제적 부담은 고려했는지, 그에 따른 조세저항을 해결할 대책은 세웠는지 알 수 없다. 통일세 제안은 남북관계 개선에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북측의 반응은 이러한 우려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북한 대남기구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는 이 대통령의 통일세 구상이 ‘전면적인 체제대결 선언’이라고 비판했다. 의욕적으로 펼친 통일세 제안은 결국 새로운 소모적 논란을 낳고 꼬인 남북관계를 더 꼬이게 만든 ‘말 폭탄’이 된 셈이다.

통일세 신설은 나중 문제다. 이보다 중요하고 급한 것이 너무나 많은데 왜 하필 문제가 많은 통일세를 화두로 던졌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평화통일을 앞당기겠다는 진정한 의지가 있다면 통일에 대한 마스터플랜을 세우고 적극적인 통일정책을 추진하는 게 우선이다. 통일 정책, 통일비용 문제, 통일 교육, 통일 외교, 통일 후 북한 개발을 위한 각 분야의 인적자원 양성 방안 등을 담아 정부차원의 로드맵을 수립해야 한다.

남북한은 분단 이후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측면에서 철저하게 다른 체제를 취했다. 때문에 엄청난 경제적 격차와 사회문화적 이질성이 생겼다. 이런 격차를 가능한 한 줄이고, 민족 동질성을 회복하는 것이야말로 통일 자체 못지않게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남북 간 격차가 커질수록 통일비용은 늘어간다. 통일비용의 산출은 기준근거에 따라 엄청나게 차이가 난다. 얼마전 미국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센터에서는 북한 주민들이 남한의 80% 정도 소득을 얻게 되는 데 2조~5조달러, 한화로 2300조~5750조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물론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독일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20년 동안 2조유로(약 3000조원)를 쏟아부었지만 가야 할 길이 아직도 멀다. 대략적인 수준이라도 통일비용을 산출하기 위해선 남북 간 격차와 이질화 수준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선행돼야 한다. 그런 다음 국민적 합의를 통해 효과적이고 구체적인 재원마련 방안을 수립하는 게 순서다. 통일비용을 줄이는 방안도 적극 추진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들도 통일을 부담이 아닌 우리의 미래를 위한 새로운 기회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순간적으로 떠오른 아이디어 하나로 통일을 준비할 수는 없는 법이다.

lotus@seoul.co.kr
2010-08-19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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