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의진 서울 누원고 교사
당대 뜻있는 학자들에 의해 제기된 이러한 비판은 관료 선발의 적정성만이 아닌 공정성에서도 과거제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음을 보여 준다. 그런데 이거, 어쩌면 이리도 오늘날의 대학입시와 닮았을까 싶다.
인천국제공항공사의 비정규직 보안검색원의 정규직화 발표로 며칠간 공정성은 매우 뜨거운 화두였다. 새삼스럽지 않다. 한국 사회에는 과거제 같은 지필평가와 공개채용만이 공정하다는, 오랜 시간에 걸쳐 굳어진 믿음이 있다. 때문에 인천국제공항공사의 보안검색요원 정규직화 발표 다음날 청와대 게시판에 올라온 ‘공기업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반대’ 국민청원이 나흘 만에 25만명을 넘어선 건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니다. 작년 모 장관 후보자 자녀의 특혜입학 시비가 대입 공정성 시비였다면 이번에는 취업 공정성 시비인 게 다를 뿐 현재 우리 사회는 공정성 문제로 심하게 몸살을 앓는 중이다.
다시 대입으로 돌아가 보자. 이 공정성 논란 때문에 교육부는 애초에 고교학점제를 기반으로 하는 2015개정교육과정의 방향을 거슬러 향후 2년간의 정시 확대를 발표했다. 공정성을 높인다는 명분하에 수능 중심의 정시전형 비중을 확대하고 학생부종합전형의 비중을 축소한 것이다. 그렇다면 수능은 과연 인재선발에서 적정한가? 공정한가?
대입에서 수능 중심의 정시전형은 대표적으로 평가방식의 단일화를 높인다. 오로지 성적이란 결과에 따라 한 개인의 과거, 현재, 미래를 판단한다. 공정성을 명목으로 평가의 다양성을 희생한 것이다. 필연적으로 한 개인의 다양한 덕목과 재능을 평가할 기회는 박탈되며 교육은 합의된 답에 빠르게 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러니 제대로 된 배움보다는 대입에 필요한 주요 교과의 지식 습득만이 목적이 된다. 할 수만 있다면 수능에서 선택하지 않은 과목은 배제하고 오로지 선택한 과목만 문제풀이 중심으로 집중적으로 공부하는 것이 대입에는 훨씬 유리하다. 인재 선발의 적정성에 의문이 생기는 지점이다.
한편 서울 소재 주요 12개 대학 입학생 중 고교 졸업생, 즉 n수생의 비율은 2020학년도에 65.6%로 재학생의 2배이다. 재수·삼수생들의 정시 합격 비율이 현역 고3학생보다 2배 이상 많다. 2020학년도 입학기준으로 서울대는 56.6%, 연세대는 68.7%이다. 그런데 이미 재수하는 비용은 기천만 원을 훌쩍 넘어선 지 오래이니 돈이 없으면 재수도 어려운 상황이다. 결국 수능을 잘 봐서 정시로 대학 가는 것도 집안의 재력이 어느 정도 뒷받침돼야만 가능하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객관식 지필평가, 명확하게 점수로 제공되는 수능이 아무래도 더 공정하지 않겠냐는 우리 사회의 오래된 믿음은 확고하다.
이러한 오래된 믿음에 반하는 결정이 바로 이번 인천공항공사의 발표다. 교육부가 공정성을 내세워 점수 중심의 입시 비중 확대를 강조했는데 막상 정부는 가장 중요한 취업 문제에서 공개채용을 거치지 않는 또 다른 공정성을 들고 나왔다. 교육부와 정부, 양쪽 모두 무엇이 중요한지 갈팡질팡한다. 대입에서의 선발과 취업에서의 인재 선발이 따로 가는 시대, 결국 이 시대에 공정성이란 무엇인가, 다시 묻게 된다.
2020-06-30 3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