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기 사회부 기자
박수정(26·여)씨는 당혹스럽고 혼란스러운지 중간중간 말을 멈추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지난 7월 중앙노동위원회로부터 서울대 비정규직 직원 중 처음으로 정규직과의 차별을 인정받았던 당시의 고무된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서울신문 7월 20일자 29면>
서울대 미술관에서 비정규직 비서로 일해 온 박씨는 지난 5일 미술관 측으로부터 돌연 ‘계약 만료’ 통보를 받았다. 무기계약직 전환 기준일(근속 2년)을 딱 한 달 앞두고 재계약은 없다는 ‘해고 통보’를 받은 것이다. 중노위가 서울대에 지급하라고 한 명절휴가비와 정액급식비, 맞춤형 복지포인트 등 어떤 것도 박씨는 받지 못한 채 해고 통보부터 먼저 받았다. 박씨는 계약서에 명시된 비서 일 외에도 미술관 대관, 회계 업무 등 정규직 직원들이 하는 일을 분담해 왔다. 그러나 정규직 직원들이 받는 수당이나 상여금도 없었다. 월급은 최저시급을 조금 웃도는 120만원이었다. 서울대 국제대학원의 기간제 직원 정모(29)씨도 앞서 지난달 31일 박씨와 똑같은 이유로 ‘마지막 출근’을 해야 했다.
현행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한 사업장에서 2년 이상 근무한 근로자는 무기계약 전환 대상자가 된다. 그러나 서울대는 2010년 10월 발송한 ‘비정규직 운영 개선계획’ 공문을 통해 ‘무기계약의 경우 재정 부담 가중을 감안해 계약 기간 만료 시(2년 도래 시) 원칙적으로 전환 금지’를 지시했다. 이를 충실히 지킨 결과 서울대는 국립대 31곳 중 무기계약직 전환율이 21.3%로 최하위 수준인 28위다.
하지만 비정규직이 겪는 차별과 퇴출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게 비단 서울대 정책 결정자들만의 일은 아니다. 지난 7월 20일자 박씨의 인터뷰 기사에는 박씨에 대한 응원글도 있었지만 ‘비정규직 처지에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것 아니냐’는 조소와 비난 댓글이 적지 않았다. 정규직과 같은 일을, 혹은 그보다 더 많은 일을 하고도 억울한 처우에 우는 비정규직에 대해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노동 감수성의 단면이다. 박씨는 직접적인 차별뿐 아니라 세간의 시선에도 맞서 싸우는 중일지 모른다. 박씨는 다음달 6일로 예정된 서울대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대학 측의 비정규직 차별에 대해 증언하기로 했다. 그의 발언이 우리나라의 척박한 비정규직 노동 인권을 개선하는 데 있어 의미 있는 울림이 되길 기대해 본다.
seulgi@seoul.co.kr
2015-09-07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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